요즘 영화계의 화제는 단연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화제의 이유는 우선 흥행의 성공이다. 곧 누적 관객 100만을 돌파한다니, ‘로보트 태권 V’가 갖고 있던 흥행 기록도 경신한 것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마당을 나온 암탉’에 환호할까? 현상을 논리적으로 파악해보자면 아마도 원작 동화의 힘이 클 것이다. 황선미 원작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미 1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원작의 인기를 바탕으로 11년간 8편의 영화로 제작될 수 있었듯이 ‘마당을 나온 암탉’ 역시 원작의 인지도 덕분에 영화 홍보에 큰 덕을 보았다. 어린이 관객들 중에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러 간다고 스스로 인지하는 아이들도 꽤 됐을 정도다.

양계장에서 달걀을 낳는 잎싹은 자유를 맛보고 싶어 무작정 단식에 들어간다. 단식이 기절로 이어지고 이를 폐사로 착각한 주인 덕택에 잎싹은 세상에 발을 딛게 된다. 예상하다시피, 세상에서의 일보 전진이 쉽지만은 않다. 족제비는 호시탐탐 먹잇감을 찾고 양계장을 벗어나 살 곳을 찾기도 마땅치 않다. 늪지대 복덕방 주인 수달 덕분에 살 곳을 찾고, 나그네의 보호로 목숨을 건지지만 하루하루의 삶은 곧 위험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족제비의 일격으로 나그네는 세상을 떠나고 나그네의 새끼만 홀로 세상에 남게 된다. 한 번도 자신의 ‘아이’를 가져본 적 없는 잎싹은 청둥오리 나그네의 새끼를 품어 키워낸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잎싹은 닭, 새끼 초록은 오리이다 보니 성장할수록 둘은 점점 달라진다.

잎싹은 청둥오리답게 초록을 키우기 위해 박쥐나 부엉이에게 사교육을 의뢰하기도 하고 모르는 척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영화평론가이기 이전 어른 관객으로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본 심경이 조금 복잡하고 착잡했다. 어쩐지 이 드라마가 잘나고, 능력 있는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고군분투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초록은 날 수 있지만 잎싹은 날지 못하고, 초록은 물갈퀴 덕분에 헤엄을 칠 수 있지만 잎싹은 물가에서 허둥거릴 뿐이다. 초록을 가르치고, 보호하고, 성장시켜 주기엔 암탉의 능력은 모든 게 부족하다. 열심히 응원해주는 것 말고는 해줄 것이 없다.

어쩐지 어미 잎싹은 자신의 자식을 보며 더 잘되기만 기도하는 한국의 어머니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싶다. 잘나고 유능한 아이는 보람이고 자랑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초라하게도 한다. 물론, 종이 다른 아이를 거둔다는 점에서 입양이나 다민족 국가 시대의 가족상을 보여주었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데 어쩐지 이런 도덕적 문장보다는 한국의 어머니상에 더 눈길이 간다. 새끼를 키워내는 어미의 고달픔이라는 아주 오래된 진실 말이다.

세상 살기가 쉽지는 않다. 안데르센도, 그림도, 이솝도, 세상이 쉬워서 즐기자는 식의 당의정을 주진 않았다. 오히려 어렵고 잔인한 세상을 보여주는 게 진짜 동화의 역할 아닐까?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이겨낼 힘을 키워주는 것 말이다. 어쩌면 잔혹한 이야기야말로 아이들에게 진짜 교육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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