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갈등 부추기는 언론 행태
“청년-중년 일자리 ‘질적으로’ 달라”
50대는 부양받는 존재? 변화된 사회상 이해 결여
통계청은 지난 2분기 50대 여성 고용률이 59.3%로 20대 남성(58.5%)과 여성(59.2%)은 물론, 20대 전체 고용률(58.9%)보다 높았다고 최근 밝혔다. 40대 여성 고용률도 65.9%로 10명 중 7명 가까이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TV와 신문을 통해 ‘일터 내몰린 엄마, 백수 아들딸’ ‘엄마 고용률이 자녀 추월’ ‘엄마들이 자녀 일자리 가로채나’ ‘40·50대 여성 일자리는 청소, 주방뿐’ 등의 보도가 쏟아졌다. 대다수 기사가 일하는 50대 여성 비율의 급증을 생계난이나 교육비, 노후자금 부담 때문으로 분석했다.
일부 언론은 중장년 여성들의 고용시장 진출을 비자발적 취업으로 규정짓고 “고용시장이 왜곡됐다”며 선정적으로 보도했다. “대학을 나와 취직한 자녀에게 용돈을 받아 쓰며 지내야 할 ‘5학년 1∼9반(50대)’ 엄마가 생업 전선에 나선 것은 반길 일만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특히 ‘4050’ 여성 취업과 청년실업을 비교하면서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노골적으로 “50대 여성의 취업보다 20대 젊은이들이 취업하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설도 있다.
여성들 사이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일하는 박수영(53·서울 금천구)씨는 “대학생 새내기인 막내딸의 등록금 부담을 덜기 위해 일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기엔 아직 젊고 사회활동의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사실 50대 여성들의 주된 일자리는 고임금, 정규직 등 ‘괜찮은 일자리’가 아니다. 비정규직 저임금으로 사회서비스 직종이 많다. 하지만 이를 비자발적 취업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언론학자들은 언론이 ‘수박 겉핥기’식 접근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팀 김영주 박사는 “학력도, 경제 수준도 다른 중장년 여성들의 취업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보도하고 있다”며 “사회구조적 접근을 통해 심층보도를 해야 하는데 추측성 기사가 많다. 대표적 사례만 잡아 인터뷰해도 20대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라는 점이 드러날 텐데 단정적으로 보도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도 “공공부문에서 퇴직한 재취업자를 제외하곤 세대 간 일자리 갈등은 없다”며 “청년층과 50대의 일자리가 질적으로 다른 데 일자리를 놓고 다툰다는 식은 잘못된 보도”라고 말했다.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가 무시되면서 세대 간 갈등으로 왜곡해 위화감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또 중년 여성 대 젊은 여성, 엄마 대 자식, 여성 대 남성 등 세대 간, 양성 간 위화감을 조장하는 것도 문제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김수정 교수는 “교육비 증가가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고 개별 부모에게 전가됐고 젊은 층 취업난으로 가계 부담이 늘어나 비자발적 취업을 할 수밖에 없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생계형 대 자아성취형의 이분법으로 보는 시각도 문제다. 생계형 취업은 비참할 뿐더러 여성이 원하지도 않고 좋지 않다는 인식이다. 중장년 여성의 노동을 비하해 자존감을 훼손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생계형 취업도 그 속에서 자아성취의 길을 열 수 있다”며 “생계형 노동이 바로 자아실현적 노동이 될 수 있도록 조건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근본적으로 경제활동이 사회활동이며, 생계형 노동이든 자아실현적 노동이든 사회기여일 수 있다는 점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변화된 사회상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다. 여성 평균수명의 증가로 지금의 40∼50대는 50년 전 30∼40대처럼 왕성한 사회·경제활동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대 고용률이 낮은 것이 문제일 뿐 50대 경제활동은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그런데 언론은 50대 여성을 자녀 용돈을 받아 쓰면서 부양을 받아야 되는 세대로 평가해 일터로 ‘내몰린다’는 표현으로 비참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노령화 시대의 노후 대비에 대한 인식도 잘못돼 있다. 일하지 않고 벌어놓은 것으로 취미생활 하며 노는 것이 노후 대비책이 아닌데 언론은 이 같은 인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따라서 여성 임금이 남성의 70%밖에 안 되는 양성차별적 노동환경을 은폐해 문제 접근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또 40대와 50대 여성을 중장년이란 키워드로 묶는 것도 문제다. 40대는 50대 이후 세대보다 경제활동 의지가 높은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자아성취를 위해 일하는 40대도 많다”며 “세대 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중장년 여성 일자리로 뭉뚱그려 보도하는 것은 정확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윤 소장은 특히 “20대와 50대 여성 고용률 차이는 미세한데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처럼 호들갑스런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