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비가 많이 내리면 아픈 남편과 함께 반지하에 살면서 천장에서 새는 빗물을 받을 그릇을 대여섯 개는 놓고 살아야 한다던 한 일본 여성이 많이 생각납니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에 와 있는 결혼이민자들의 삶은 평탄치만은 않습니다. 한 연구에 의하면 다문화 가정의 37% 이상이 월 소득 100만원 이하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폭력과 시집 식구들의 냉대에 시달리고 있는 이민자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인테리어 회사 사장이라고 들었는데 와서 보니 일용 인부이거나, 두 대 있다던 자가용이 오토바이와 경운기인 줄 모르고 온 경우가 많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문화 그리고 다문화 가족들의 미래는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환경에서 어렵게 살더라도 가족을 지키고 자녀를 제대로 키우려는 억척 다문화 여성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올 때는 한국어를 한마디도 몰랐지만 열심히 배워 문맹인 남편에게 한국어 선생이 됐다는 이야기, 남편이 거의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도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 키우며 잘 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제는 자립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주변의 어려운 다문화 가족들을 도우려는 베트남, 필리핀, 몽골 등 출신 국가별 자조 모임들도 제법 생겨나고, 봉사활동을 하는 ‘생각나무 BB센터’ ‘무지개 동아리’ ‘물방울 나눔회’ 등 단체들도 있습니다.

가끔 결혼이민자들이 한국어를 한국 사람들처럼 유창하게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자기들 나라에서는 고등교육까지 받은 똑똑한 사람들을 한국어를 어눌하게 한다는 이유로 낮추어 보는 경우를 보기 때문입니다. 제 남편은 가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만약 지금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고 하면 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철학자가 절대로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은 한국인들이 미국 같은 영어권으로 유학을 가는 한국 학생들도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말은 잘 못해도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도 점차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다문화 붐도 이젠 성숙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가운 마음도 듭니다. 다만 최근 들어 소위 안티 다문화 모임들이 늘어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합니다. 이들은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특히 불법체류 노동자) 문제 모두 한국민의 안위에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서민경제와 일자리 등 노동 여건과 관련한 피해를 주고,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해 국가 정체성을 흔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 외국인 노동자 관련 문제는 처한 입장에 따라 그런 의견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되고 또 최근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노동자를 정책적으로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기도 해서 이해는 되지만 다문화 가정이 단일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다문화 가정에서 결혼이민자 한 명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은 모두 한국인입니다. 결혼이민자들도 이 땅에서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매년 3만여 명씩 늘어나는 결혼이민자 수가 21만 명이 넘었습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이나 여론과는 별개로 한국에서 배우자를 찾기 어려운 사람들의 국제결혼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들 가정의 자녀 수도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어, 이를 위한 선제적 계획 및 정책 수립도 시급한 것으로 보입니다. 결혼이민자 수에 배우자와 평균 자녀 및 시집 가족을 합치면 100만 다문화 시대라는 얘기들을 합니다. 이들을 위한 정책과 행사 등도 필요하겠지만 온 국민의 따뜻하고 관대한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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