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진행 중이다. 또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군부 엘리트와 왕족에 독점됐던 중동의 부가 일반 시민들에게 나눠지고 있다. 혁명에 성공한 이집트나 튀니지를 중심으로 점진적이나마 민주화의 기반인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있다.”

이집트의 저명한 민주화운동가 사아드 알-딘 이브라힘은 6월 28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동의 시민혁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1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의 재스민 혁명은 실제로 중동 사회에 많은 것을 바꾸어 놓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국민의 정치의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억압적인 독재정권하에서 팽배해 있던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국민이 여러 나라에서 현재와 미래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대중의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적지 않은 시민사회가 등장하고 있다. 인터넷에 기반을 둔 온라인 단체들도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추가적인 민주화 개혁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목격된 빠른 속도의 시민혁명은 향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동의 ‘재스민 혁명’은 역풍을 맞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반정부 시위와 투쟁이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지만, 위기감을 느낀 독재정권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예를 들어 시리아 정부는 헬기와 탱크를 동원해 반정부 세력을 무참히 학살하고 있다.

무력 진압만이 반혁명 조치는 아니다. 혁명에 성공한 나라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동 국가들은 정치적 공간을 폐쇄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3월 언제든지 자의적 해석을 통해 언론 검열이 가능하도록 한 새 언론보도 지침을 내놓았다. 여기에 오일머니를 보유한 산유국들은 ‘당근책’도 쏟아내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400억 달러 이상을 풀어 공무원 임금을 인상하고, 주택보급 등 각종 서민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쿠웨이트는 혁명 초기인 1월 중순 이미 국민에게 1인당 약 400만원을 지급했다.

과거 동유럽의 도미노 민주화와 같은 빠른 시민혁명의 확산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중동 내 다양한 변수가 사태의 본질을 변모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집트와 튀니지 등 군부 권위주의 공화정에서는 시민혁명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고, 따라서 혁명에 성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리비아, 예멘, 시리아 등 전제적 전체주의 성격의 국가들에서는 사태가 내전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여기에 걸프 지역 왕정 권위주의에서는 수니-시아파 간 종파 분쟁의 양상이 진행 중이다. 더불어 리비아 사태에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등 국제적·지역적 분쟁 성격까지 첨가된 양상이다.

다양한 형태의 갈등 요인이 정권 유형별로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되면서 사태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중동 지역의 정치 변동을 단순히 민주화 또는 시민혁명의 틀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향후 정치 및 권력구도도 국가별 혹은 체제별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신권위주의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크고, 내전이라는 교착 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으며, 종파 갈등이 심화되어 만성적 사회분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동의 여성과 어린이의 고통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중동사태는 장기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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