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책 최우선 순위 다시 설정해야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2월 30대 여성 100여 명을 대상으로 포커스그룹조사(FGI)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80%가 “한나라당이 싫다”고 했다. “경제 살린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찍었더니 오히려 팍팍해졌다” “한나라당은 가진 사람들 편만 드는 ‘부자당(黨)’ 아니냐” “입만 열면 거짓말 아니냐…판을 바꾸고 싶다”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고 한다.

30대가 한나라당에 가장 비판적인 연령층이라는 사실은 이미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다. 선거 직후 방송 3사의 합동 출구조사 결과,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은 30대 연령층에서 야당 후보들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다. 서울의 오세훈 후보는 한명숙 후보에게 34.4%포인트(p), 경기도의 김문수 후보는 유시민 후보에게 36.6%p, 인천의 안상수 후보는 송영길 후보에게 44.4%p 차로 완패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30대의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가계 부채의 압박, 자녀의 교육비 부담 증가, 전·월세 값과 물가 급등, 육아 문제와 비정규직화 등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차별 문제 등이 겹치면서 정부 여당에 대한 불만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30대 여성층의 반한나라당 정서는 큰 틀에서 보면 이명박 정부의 여성정책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경제 살리기를 기치로 출범한 이명박(MB) 정부는 성장과 효율에 방점을 두다보니 평등과 약자 배려를 강조한 진보 정권들보다 여성정책에 대한 방향성이 약했다. 결과적으로 많은 여성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MB 정부에는 여성정책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더구나 대통령의 여성정책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게 보인 것도 약점이 됐다. 집권 초기 여성부를 폐지하려고 했던 점, 여성정책의 핵심을 ‘젠더 마인드’보다는 가족에 중점을 두는 인상을 준 점,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역대 정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현 정부에서는 여성정책이 위축됐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제 MB 정부도 21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따라서 남은 기간 기존의 비판과 비난을 불식시키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정책들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여성정책에 강력한 의지 표명이 필요하다. 현재 여성정책과 관련된 육아, 청소년, 노동, 가족 등의 업무는 보건복지부, 행자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분산돼 있다.

여성정책의 연계성을 강화시키고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성정책 통합·조정회의를 대통령이 이른 시일 안에 직접 주관할 필요가 있다. 그밖에 경제가 어려울 때 국가경쟁력강화특위를 활용한 것처럼, 대통령이 가칭 ‘양성평등강화특위’를 만들어 전문가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양성평등에 대한 국민 체감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묘책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새로운 어젠다를 개발할 것이 아니라 여성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정책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실증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신문이 지난해 창간 22주년 특집으로 실시한 ‘여성고통지수’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여성들이 한국에 살면서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한 것인 만큼 향후 실천 과제 수립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MB 정부의 집권 후반기 핵심 기조인 공정사회론과 여성정책 간의 연계성을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성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남성특권과 여성차별이 없는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들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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