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문화 속 동병상련 겪은 여성 건축인들

사단법인 한국여성건축가협회(KIFA)는 1982년 발족돼 필자 역시 발기인으로 참여해 협회에 가끔씩 들고나며 소극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필자는 설계사무소에 근무하며 육아와 살림으로 정말 힘든 시기여서 활동을 할 여유가 없었다. 당시 80년대 여성 건축인은 남자 100명에 한두 명의 비중이었다. 잘하면 두드러지고 못해도 더 두드러지던 시대였으며 여성 평등이니 하는 개념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시절이다.

6년간 근무하는 동안 대리라는 직책을 달았고, 건축사면허 시험에 합격했다. 갑작스런 동료들의 경쟁의식, 건축사면허 없는 상사의 눈총 등 애매한 경쟁을 소리 없이 겪어내야 했다.  그런 불편한 시선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사표를 냈다. 설계사무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던 남편의 사무실에 등록을 권유받고 있던 중이었다. 퇴직과 함께 바로 남편과 사무실을 같이 시작했지만 너무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해왔던 터라 우선 아이들을 키우는 데 더 비중을 두게 됐다.

이즈음 여성건축가협회의 이사 활동 권유는 필자의 삶에 솟아나는 샘물 같은 신선한 기회였다. 협회에서는 여성으로서 가장 부담이 되는 육아문제를 공동 연구과제로 삼아 ‘탁아시설의 확대방안’이라는 과제를 통해 정책·연구·실무팀들이 세미나를 가졌다. 시설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시범 설계를 소·중·대규모별로 책도 펴냈다.

세계의 유명한 건축문화를 답사하는 건축 투어를 시작했고, 국내 건축계에서의 여성 활동의 어려움을 서로 토로하며, 설계에만 국한하지 않고 건축 활동의 여러 분야 정보를 서로 얻을 수 있었다. 건축이라는 전문 분야 여성들이 모여 혼자만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공동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극복하는 전환점이 되도록 여성건축가협회에서 그 역할을 하게 됐다.

여성건축가협회가 28주년이 되던 2010년 ‘세계여성건축가대회(UIFA)’가 서울에서 열렸다. UIFA는 1963년 유럽, 미국 등 선진국 여성 건축가들이 함께 결성한 세계적인 건축 단체로 이번 서울대회가 16번째다. 지난 15차 루마니아 대회에서 서울로 대회를 유치했다.

세계적인 여성단체 중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UIFA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세계의 여성 건축인들에게 상당한 호기심으로 다가갔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동계올림픽의 김연아의 나라로 알려진 대한민국에서의 UIFA.

비록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과 천안함 사태로 해외 참가자가 3분의 2밖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세계 여성 건축가들에게 신라 천년의 도시 경주 등 한국의 전통 건축문화와 서울과 송도 신도시, 한국의 아파트 문화, 새만금 신도시 등 현대 건축의 첨단기술 등을 소개하며 확실히 인식시켜줬다.

이러한 국제대회는 아시아 건축단체의 행사인 아카시아 부산대회를 제외하곤 한국의 건축 단체 중 처음으로 개최한 것이었다. 이 대회로 말미암아 한국 건축계가 처음으로 힘을 합하고 협력해 성공적으로 세계적인 대회를 치렀다고 자부할 수 있다.

우리 건축계의 여성들은 여성운동의 선구자들처럼 앞장서서 여성의 권리를 요구하고 평등을 외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각각의 자리에서 그들이 가진 여러 가지 장점으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써왔고, 남성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한국 건축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여전히 숫자적인 열세로 인해 목소리가 작고, 남성 중심 건축문화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참여하고 있지만 요즈음 여학생들의 건축학과 입학과 취업의 증가 추세 그리고 그들의 열정을 보면 이제 여성 건축인 비율이 전체 건축인의 30~50%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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