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성폭력운동 20년 한길

 

한 여자는, 엄마가 어디 다니느냐 물으면 “우리 엄마 성폭력 다녀요” 말하곤 하던 네 살 아들이 대학생이 되기까지 현장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전에서야 나영이 같은 성폭력 2차 피해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여성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현장을 떠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넓고 깊은 틀에서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준비하고 있고, 현장에 남아있는 후배들을 위해 넉넉한 울타리가 되고자 한다. 또 한 여자는 선배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현장에서 앞서 간 선배들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굳건히 서있다. 때론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간혹 있으나 남편이 “그럼 뭘 하려고? 계속 열심히 일해”란 말을 할 정도로 현장에 대한 애정은 식을 줄 모른다.

바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이사와 이윤상 현 소장의 얘기다. 

이 둘의 삶의 터 성폭력상담소가 4월 13일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는 ‘20’이란 단순 수치를 넘어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제와 그 안에 잠재된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대안을 개척해온 하나의 ‘역사’였고 두 사람은 그 안에서 주역을 맡았다. 이 세월 동안 성폭력특별법 제정에서부터 아동성폭력 범죄자 신상 공개와 전자발찌, 화학적 거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치가 취해졌다.

1991년 국내 최초로 성폭력 전문 기관으로 문을 연 성폭력상담소(초대 소장 최영애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서 초기부터 각자 총무로, 자원활동가로 일해 오다 소장을 맡아 활약해온 두 사람을 만나 소회와 고민을 들어보았다. 그들은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선후배 사이로 여성신문 선정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 지도자상’(미지상) 수상 등 공통분모도 상당하다. 그래서 그들의 말대로 “운명적으로” 상담소와 엮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꿈을 함께 꿀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엔 ‘아동성폭력’만 있다?

-여성신문:성폭력상담소 출범 당시부터 여성학자 등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아동성폭력 문제에 집중해왔고, 이것이 성폭력 이슈의 주도적 흐름이 돼왔다.

이미경 이사:“사실 바로 그 지점이 우리 상담소의 빛과 그림자다. 김부남 사건, 진관·보은 사건부터 최근의 많은 사건에 이르기까지 출발점은 다 아동성폭력이다. 우리 쉼터인 열림터 입소자 80%가량이 친족성폭력 피해자고, 전체 상담 건수의 30%도 아동성폭력 문제다. 우리가 정부로 하여금 아동성폭력 문제에 혈안이 돼 법 정책을 만드는 데 선도적 기여를 해오긴 했지만 반면 이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데이트강간, 부부강간 등 다양하게 성폭력 문제 이슈화를 시도했지만 언론이 가장 뜨겁게 반응한 것은 아동성폭력 이슈였다. 아동성폭력이라면 우리 사회도 무리 없이 받아줄 수 있을 것이란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다.”

이윤상 소장:아동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언론이나 여론의 추이는 자극적이고 흥미 위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도 역시 이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수많은 정책 당국자들과의 회의에서 현장 활동가로 제안한 상당수 제안들이 정책으로 나왔을 때 13세 미만 아동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놀랍다. 문제는, 똑같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아동성폭력엔 뜨겁게 공분하고 염려하면서도 성인성폭력에 대해선 너무나 싸늘한 이분법적인 태도다.”

성폭력 통념 바꾸기, 너무나 힘들다

-여성신문:무엇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가.

이 이사:“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같은 맥락에서 데이트강간, 부부강간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늘 생각한다. 여러 여성을 농락해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김인수 사건이 일어난 1950년대와 지금 2000년대가 인식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소위 ‘보호할 만한’ 정조론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성폭력은 분명히 우리 사회가 일정 부분 책임을 담당해야 하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들 무덤덤하다. 법과 제도를 만들어나가면 좀 바뀔 줄 알았다. 그래서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운동을 해왔는가 다시 한 번 회의하고 자문하게 된다. 여기서 한 마디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가해자 주변 사람들의 인식이 특히 강고하다는 점이다. 평소 여성인권 의식이 뛰어나 보이던 사람도 가해자가 가족이나 지인인 경우 일단 피해자 유발론을 주장하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와 함께 사는 것 못지않게 가해자와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 소장:“아동성폭력 전문화? 전혀 반대할 이유 없다. 문제는 다양한 관심과 접근이다. 아동은 성적으로 하얀 도화지 같은 존재고, 성인 여성은 꽃뱀이고 유혹자인가. 성폭력 사건 재판을 참관하면 도대체 이 재판이 가해자 재판인지 피해자 재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성인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의심이 너무 짙다. 이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 향후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법은 하나의 툴이고, 이를 운영하는 사람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왜곡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무엇보다 성폭력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둘러싼 판검사, 변호사, 의사, 상담자 등 소수 전문가들의 영역이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피해자건 아니건 간에 성폭력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수’라는 성폭력 피해자가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한 문제 제기는 어떤 전문가의 글보다 설득력이 있다. 잔혹한 아동성폭력의 피해자 나영(가명)이가 자라서 취직하고 결혼을 해 성인 여성이 되는 미래 사회가 과연 나영이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회이겠느냐는 말이다. 방법론적으론 이 면에서 공교육 인프라가 혁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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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특별법 개정 수차례…실속 못 챙겼다

-여성신문:지금 이 시점에서의 성폭력특별법 개정, 무엇이 가장 절실한가.

이 이사·이 소장:“우리 둘 다 재고의 여지 없이 ‘친고죄 폐지’다. 성폭력특별법은 그동안 15차례 개정을 거쳤다. 그 중 8회만 내용상 변화가 있었고, 나머지 7회는 다른 법이 바뀌면서 부득이하게 명칭이 바뀐 경우다. 2004년 밀양 사건 당시 국회엔 13개의 개정안이 올라왔지만 법안을 발의한 의원도 그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해 비난을 샀다. 지금 18대 국회엔 28개의 개정안이 올라와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틀에서가 아니라 일부 조항 한두 개를 가지고 씨름 중이다. 그래서 국회의원들이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고 의논 좀 해줬으면 좋겠고, 입법뿐만 아니라 법체계 운영에도 좀 더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

느리지만 그래도 ‘변화’는 일어난다

-여성신문:그래도 인식의 변화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이사:“물론이다. 예전엔 강간당하면 순결 강박관념 때문에 더러 가해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1999년 한 여고생이 성폭행을 당했지만 가해자가 그와 결혼한다고 해서 재판부가 가해자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또 나영이의 경우처럼 학교, 학부모, 학생, 교사 등 지역공동체가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새로운 흐름도 조금씩 감지된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젠 반(反)성폭력운동 등 다소 부정적인 전문 용어들을 좀 더 희망적인 개념의 쉽고 대중적인 용어로 개발하는 시도를 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을. 한편으론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 여성 스스로 즐겁고 유쾌한 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가둬두고 있지 않나 하는 고민도 해본다.”

이 소장:1990년대만 해도 딸 가진 부모들은 성폭력 두려움이 막연히 있었는데, 요즘은 아들 가진 부모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더해 혹시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부모들도 상당수 있다. 폭력과 놀이의 개념과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한 좀더 통합적인 성폭력 예방교육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실시해야 한다. 여기엔 인권이란 과연 무엇인지, 아이들 눈 높이에 맞춰 상대방의 인권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여성과 남성을 서로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등 인권감수성이 기반이 돼야 한다. 이런 교육이 부재하니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도 근본적으로 가부장적인 직장문화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어떤 것이 법에 저촉되고 안 되는지 등의 ‘○×’ 식의 기계적이고 나열적인 교육이 되는 것이다.”

영 페미니스트 활동가를 키우는 것,

영원한 숙제

-여성신문:이제 상담소 차원으로 들어가 보자.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가.

이 이사·이 소장:“물적자원도 중요하지만 인사가 만사다. 90년대와 달리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여성운동가 자원이 정말 부족하다. 대학가 자체가 이 부분에서 죽어 있다. 총여학생회나 여성학과가 없어지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멸종의 위기라고나 할까. 물론 개별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있겠지만 한 개인에 불과하다. 혼자서만 자기 관심사를 키울 뿐 타인과 이를 공유하고 토론하며 해결을 위해 일을 함께 도모해보는 경험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개인 개인이 모여 만들어내는 영 페미니스트 풀(pool)이 갖는 힘이 아쉬운 거다. 

20대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활동이나 조직사업 등 관심 있는 이들을 유인할 장이 없다. 우리 모두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할 문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여성운동의 길이 열린다.”

그래도 이 길을 계속 가는 이유, 

첫째도 둘째도 ‘자매애’

-여성신문:이 일을 20년간, 또 앞으로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이 이사:“여성학을 배우고 강의하면서 구체적인 실천운동 차원에서 상담소 일을 시작하게 됐고 한 2년 정도만 몸담으려 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웃음). 그러나 지난 20년간 이 곳에서의 삶이 내게 많은 성장을 가져다주었다. 운동의 의미는 여기 계속 머물러 있을 때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때 생기는 현장의 힘이야말로 다른 어떤 이론에서도 나올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구체적으론 생존자들의 용기와 저력이 나를 버티게 하는 희망이다.

친족성폭력 피해자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열림터에 입소했던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계속 우리와 연락하면서 서로 위로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생존자로 성장해갔다. 이런 생존자들 덕에 성폭력 피해로 임신한 여성이 인공유산을 택하고도 1심 판결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등 피해자에게 터무니없이 몰인정한 사회에 대한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소장:“자원활동가 출신으론 내가 첫 소장이라고 한다. 여성운동에 대한 오래된 관심이 여성학과 결합돼 상담소 일을 시작했지만, 거짓말 좀 보태서 처음엔 이틀에 한 번꼴로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웃음). 사실 조직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고 가는 소장직은 개인적으론 별 재미가 없다. 힘들 때마다 최영애·이미경 역대 소장 등 선배 그룹들이 정말 많이 격려해줬다.

후원행사나 정보 연대는 물론이고, ‘난 너의 서포터스야. 부르기만 해, 카드 들고 달려갈 테니’ 하시곤 한다. 모두 다 바쁘신 분들인데 상담소 일이라면 열 일 제치고 달려오신다. 이런 후한 대접받는 후배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근본적으론 성폭력이야말로 여성 억압과 통제를 가장 확실히,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가부장적 수단이라 생각했고, 여기 와서 그 가부장제의 견고성이 바로 ‘나와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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