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의 힘은 단원들의 개인기에서 나오지만, 음악을 만들고 선율과 하모니를 다듬고 전체 음악을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다. 이날 지휘자 마크 깁슨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음악적 해석이 돋보이는 지휘로 서울필하모닉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반부는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중 ‘아! 그리운 이름이여’(Caro nome che il mio cor)로 질다의 아리아로 무척 유명한 곡이었다. 스페인의 전설적 작곡가이며 기타 음악의 대가인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을 편곡한 ‘사랑의 아랑훼즈’(En aranjuez con tu amor)와 영화음악의 거장 모리코네의 ‘내 환상 속으로’(Nella Fantasia)를 소프라노 김현정이 정감어린 소리로 노래의 질감을 잘 구사했다. 그녀의 화려한 중음은 노래를 더욱 호소력 있게 만들었다. 테너 곡으로 마스네의 오페라 베르테르 중 ‘왜 나를 깨우는가’와 이탈리아 작곡가 쿠르티스의 ‘돌아오라 소렌토’가 테너 강무림의 열창으로 연주됐다. 그의 청아하고 탁 트인 소리는 청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어 좋았다. 맑고 고운 고음 처리와 음악적 해석이 오케스트라와 잘 조화를 이뤄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어 더블베이스가 연주됐다. 더블베이스는 자주 접할 수 있는 악기는 아니지만 오케스트라의 저음을 담당하는 중요한 파트다. 쿠세비스키 작곡의 콘트라베이스 협주곡 3번을 김인화가 연주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큰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능숙하고, 그가 보여준 탄탄한 운궁법과 음악을 풀어가는 능력은 그가 기초가 잘 닦인 연주가임을 보여주었다.
서울필하모닉이 20년간 민간 오케스트라의 대표적 악단 자리를 지켜오면서 괄목할 성장을 해온 것은 이날 후반부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작품 연주로 확실히 보여주었다. 교향 모음곡인 세헤라자데(Scheherazade) 작품 35는 섬세하면서도 스케일이 큰 곡으로서, 지휘자의 곡 해석과 바톤 테크닉이 음악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악장 김지은의 활약이 돋보였으며, 지휘자의 바톤 테크닉이 뛰어나 단원과의 일체감이 대관현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금관의 소리는 어느 때보다 자신만만했고 청중 모두는 서울필하모닉의 연주에 흠뻑 빠져 만족한 모습이었다. 이날 연주를 통해 서울필하모닉은 한국의 대표적 민간 오케스트라로 더욱 세련되고 격조 높은 음악을 연주하여 청중에게 사랑받는 오케스트라로 더욱 발전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