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 hoc ergo propter hoc’ 라틴어인 이 말의 뜻에 대해 유명한 미국 드라마인 ‘웨스트 윙’에선 이렇게 말한다. ‘After it, therefore because of it.’ 즉, 시간상 전후관계에 있다 할 때 반드시 먼저 일어난 일이 나중에 일어난 일의 원인이라고 추정해 버리는 인과 설정의 오류를 의미한다.

우리는 일상은 물론이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 사고에 대해서도 그 이유를 눈앞에 쉽게 보이는 선행 행동이나 사건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웨스트 윙’에선 텍사스 유세에서 대통령이 텍사스 문화와 관련된 시답잖은 유머를 했는데 그 후의 결과로 인해 결국 유머로 인해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참모진이 예로 나온다.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예를 들어보자.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한 청년이 있다. 그리고 곧이어 그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까지 청년은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참혹한 전쟁을 배경으로 매우 폭력적인 행동을 담은 온라인 게임을 장시간 했다는 경찰의 수사 경과 발표가 나왔다.

세상은 바로 들끓기 시작한다. 신문은 게임의 폭력성에 관한 특집 시리즈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하고 방송은 PC방 전원을 몰래 차단해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의 폭력성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시사토론에서 게임이 폭력적인 이유를 논쟁하고 심리학자는 한창 성장할 나이의 여린 청소년들이 얼마나 어른들의 상업적인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과잉 폭력에 내몰려졌는지 말할 것이다. 그리고 불광동에 사는 경석이 엄마는 학교 간 아들 몰래 그 녀석의 컴퓨터를 뒤져보며 두려움에 떨 것이다. 며칠 뒤, 온라인 게임의 폭력성에 관해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게 된다.

어떤 누구도 사실 그 청년이 장시간 게임을 하며 방에 틀어박혀 있기 전(!)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본 후 그 영화에 나온 것과 동일한 모방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보며 우리는 영화가 범죄에 끼치는 영향력을 이야기할 뿐, 왜 그 청소년은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결심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동기를 찾다보면 우리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어두운 면이 순식간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이 사라진 학교의 학생들에게서 아름답고 풍요로운 언어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또한 문학과 예술이 사라진 이유를 찾으려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변화시킬 엄두를 낼 수는 없고, 무언가 분노의 명백한 대상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온라인 게임을, 영화를 도마에 올려놓고 폭력의 원흉이라고 부른다. 거친 청소년 언어의 근거라고 결심한다. 밤 10시가 넘도록 학원을 전전하며 갈라진 그 소년의 심장을 치료하기에 우리는 너무 두려운 게 많고 겁나는 것이 많아 그저 눈앞에 보이는 마녀에게 너만 없으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허황된 주문을 외우고 마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대한민국에서 이제 십대의 어린 친구들도 세상의 서열에서 밀려나면 인생이 끝장난다며 공포의 결심을 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학습 기계’처럼 살고 있다. 대학의 살인적인 등록금은 새로운 학문의 도전이 아니라 끊임없는 ‘알바 천국’의 소용돌이에서 학생들을 다람쥐로 몰아가고 있다.

모두가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잠깐의 실수로 떨어지면 용서는 없다. 동정 없는 세상에서 이 친구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버린 게임마저 강탈하면 그나마 편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 무책임한 우리 어른들 덕에 대한민국은 오늘도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없다. 게임 속 전쟁보다 더 눈물 섞인 피가 흐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