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성상납 관행에 경종…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의 ‘디딤돌’상 수상

“정당한 처벌이 곧 성폭력 피해자 치유의 첫걸음입니다. 이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으면 피해자는 평생 자신이 끊임없이 의심받는다는 피해의식 속에서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 ‘내가 거기 안 갔더라면?’ ‘왜 바보처럼 거부 못했을까’란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주눅 든 삶을 살 수밖에 없죠. ‘난 이렇게 고통 받는데 저 가해자는 멀쩡히 잘 살고’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자기분열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 제대로 된 삶을 살기가 힘들어지죠. 그런데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 것을 보면 ‘내가 그래도 잘못한 건 아니구나’ 위안을 받게 되고, 여기서 새 삶을 살 힘을 얻게 됩니다.” 

법은 상식적이고 따뜻했다. ‘정의의 여신’은 우리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칼과 안대 그리고 저울로 무장하고 있으리라. 최근 인권단체(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로부터 ‘2010년 성폭력 수사, 재판과정에서의 여성인권 보장을 위한 디딤돌’로 선정된 부천지청 박은정(39·사시39회·사진) 검사와 2시간 동안 가슴 울컥하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머리를 스친 단상들이다.

“성공할 때까지 난 동물일 뿐이야” 치닫게 하는 연예계 관행 안타까워

박 검사의 직접적 수상 계기가 된 사건은 지난해 초 ‘장모양 사건’. 언론에 회자됐던 한 여가수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방송연예 산업의 구조와 특성을 반영해 법리를 구성하고, 수사검사와 공판검사를 겸해 피해자가 공정한 수사를 받을 수 있게 함으로써 여성 연예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장했다”는 것이 강지원 변호사, 이윤상 성폭력상담소장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선정 이유다.

박 검사가 장모양 사건에서 가장 의미를 두는 것은 “처음엔 서로의 목적에 의해 약간의 호감을 가지며 시작된 관계라 하더라도 ‘성상납’의 전제하에 이뤄지는 관계는 명백히 성폭력임을 입증했다”는 것. 연예인 지망생 성폭력 사건에서 실형을 받은 1,2심 판결은 간혹 있었으나 그런 사건들은 연예기획사 대표가 침실에 몰아넣고 때리고 협박하는 등 물리적 힘을 가한 전형적인 일반 강간 사건들이었다. 그런데 장양 사건에서 가해자는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박 검사는 서울서부지검 성폭력사건 전담 검사로 재직했던 2010년 초 장양 사건을 접하고 2월 한 달간의 조사를 통해 3월 가해자인 연예기획사의 실질적 대표인 K를 구속했다. 전도유망했던 신인 여가수 장씨가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찾아와 상담을 하면서 “어떻게든 연예기획사 대표에게서 사과와 정당한 보상을 받고 싶다”는 호소로 시작된 사건의 본질은 성 착취였다. 주류회사 오너의 아들로 지방 유지인 K는 장양에 대한 10년간의 노예계약을 악용해 2년 넘게 그를 괴롭혔다. 섹스 중독증이 의심되는 K는 변태 성행위는 물론 각종 불결한 성기구를 사용했고 이로 인해 장양은 자궁암 초기까지 갔다. 아버지가 말기암 환자로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피해자는 K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K가 “야한 속옷을 입고 와라” “어느 호텔 몇 호실에 가있어” 등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달려가야 했으며 공연 수익금도 ‘일괄정산’이란 미명하에 제대로 받지 못했다.

성폭력 2차 피해, 언론도 책임 있어

그해 9월까지 진행된 재판을 통해 피해자는 K로부터 상당액의 보상금을 받는 선에서 합의, 공소가 기각됐다. 내심 “끝까지 가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간’이란 대법원 판례로 남아 연예계 성폭력 관행에 경종을 울리길” 바랐던 박 검사로선 낙담스러운 결과였다. 피해자 자신도 그에게 “고생해주셨는데 고소를 취하해 미안하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이만큼이라도 재판을 진행했기에 그 정도의 보상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장양의 아픔과 상처가 덜어졌다”는 데서 스스로 위안을 찾았다.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 변호사 3명이 돌아가면서 나와 질문지를 30장씩 돌리곤 했어요. 피해자의 전 남자친구까지 법정에 세우고 예전 부지불식 중 찍은 섹스 동영상까지 돌리더군요. 한번은 가해자 변호사가 사진 한 장을 꺼내 ‘이 젖꼭지 본인 것 맞죠?’라고 묻더군요. ‘넌 원래 그런 애 아니냐, 네가 유혹해놓고 왜 성폭력이라고 하느냐’는 의미였죠. 피해자가 너무 괴로워 자살을 할 지경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이미 정신병에 시달리고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한 차였어요.”

그는 고 장자연씨처럼 자아가 강할수록,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고민할수록 연예계 관행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앞으로 성공하기 위해 지금은 ‘동물’일 뿐이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박 검사는 2000년 임관 때부터 줄곧 검찰청에선 ‘주변부’로 인식되는 여성·아동 관련 업무, 특히 성폭력 업무를 맡아왔다. 2006년엔 국가청소년위원회에 파견 근무를 나가 지금의 청소년 보호 관련 법률과 제도 정비사업에 주력했다. 그동안 서울 용산과 제주에서 연이어 청소녀 살해 유기 사건이 일어났고, 급기야 2007년 말 혜진·예슬 실종사건이 일어나 온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전자발찌법, 치료감호법, 성충동억제약물치료법(화학거세) 등 성폭력 범죄에 대해 “폭포수처럼” 제도와 정책이 형성됐다. 이와 함께 성폭력 수사 역시 검찰청에서 점점 중요 업무로 인식되고 있는 추세다.

그는 아동성폭력 중에도 친족 성폭력의 폐해가 더욱 심각하다고 말한다. 동일 공간에서 성폭력이 일상화되기 때문. 지난해 6월 고소돼 8월 그에게 배정된 친족 성폭력 사건은 성폭력 사건일수록 전문가의 개입이 절실함을 일깨워주었다. 친부가 아내 가출 후 “너희가 엄마 역할 대신해야 해”라고 윽박지르며 큰딸이 7세 때부터 7년간 성폭행한 사건이었다. 큰딸이 생리를 시작해 작은딸에게 성폭행이 퍼부어지자 작은딸이 언니를 설득해 집을 나와 친부를 고발했다. 박 검사가 보기엔 얌전하고 순응적인 큰딸보다 거세게 반항하는 작은딸의 장래가 더 걱정이었는데 전문가 입장에선 분노를 표출하는 작은딸보다 고통을 은폐한 큰딸이 향후 더 큰 정신적 고통을 받을 것이란 진단이 나왔다. 박 검사는 초동 수사부터 친부의 친권 상실에 이르기까지 사건을 진두지휘하며 가해자인 친부에게 20년형이 선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어린 영혼들의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을 법정에서 다시 ‘고문’하지 않는 것이다. 아동성폭력 사건은 2,3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경찰 단계에서 피해자에 대해 충분한 영상 녹화를 확보하고, 이 영상 녹화만으로 재판하게 돼 있다는 것. 그래서 일전에 대검찰청이 지원한 ‘검사 프린세스’에서 여검사가 아이를 법정에 세우는 장면이 나올 때 대경실색하기도 했다.

“아이와 눈 맞추고 침착하게,

 편안히 얘기하세요”

그는 성폭력 2차 피해에서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일침을 놓는다. 소위 진보 언론이고 보수 언론이고 간에 “한 방에 둘이 눕혀 놓고도 (성폭행을) 했어요?” 식의 무감각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는 것. “도대체 기자들이 왜 그런 상세한 상황이 궁금한지 모르겠다”고 그는 말한다. 2009년 10월 한 청소년 합창단 지휘자가 여러 명의 남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 방송사가 어설픈 모자이크로 영상을 처리해 피해 남학생들이 당혹스러워했던 것을 그는 지금도 분노로 기억한다.

그는 특히 엄마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많다. 아동 성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고 피해자가 어릴수록 진술의 어려움은 있지만 관찰성과 침착성을 유지하면 의외로 쉽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항상 아이와 눈 맞추고 얘기하고 아이가 편한 상태에서 스스로 얘기할 수 있도록 유도해달라”고 당부한다. 성폭력 가해자 대부분은 피해 아동에게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야, 엄마에게 말하면 안 돼”라며 마치 둘이 공모하고 아이가 잘못한 것처럼 만들어 피해 아동을 침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가 맡은 사건 중 성폭력 피해자의 나이가 48개월 된 여아가 있었다. 수영장 강습을 받던 아이가 음부를 심하게 만지고 팬티를 자주 갈아입는 것을 보고 엄마가 무심코 이유를 묻자 아이가 대답했다. ‘관장 선생님이 잠지 만져 그렇지’라고. 엄마는 아무 말 않고 아이를 그대로 해바라기아동센터로 데려가 전문가에게 아이의 진술 녹화를 의뢰했고, 수영 강사를 구속해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 그러나 “그 많은 애들 중 왜 하필 우리 아이를 택했을까, 아이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난 왜 우리 아이를 지키지 못했을까”란 괴로움에 우울증까지 갔다. 결국 가해자가 피해 아동의 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어린 사과”를 함으로써 엄마는 겨우 우울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바람은 13세 미만 아동성폭력에 대한 집행유예율 40%를 전문적인 수사로 최대한 낮추고 현 6%에 불과한 신고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된 수사로 “이게 바로 정의구나”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네 살 아이 진술의 진정성

 믿고 대법원까지 간다”

가냘픈 외모의 박 검사는 치열한 워킹맘이기도 하다. 역시 검사인 남편과의 사이에 6세 쌍둥이 아들을 뒀으면서도 딸이 하나 더 있었으면 바란다. 평일 육아는 전적으로 같이 사는 친정엄마의 몫. 오전 7시 30분 집에서 나와 일러야 저녁 8시 퇴근에, 밤 11시까지도 업무가 연장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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