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로 삶터를 빼앗겨도 인생은 계속된다!

순간에 세상이 바뀌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삶과 죽음이 나뉘었다. 그토록 재난 설비와 방제 시스템이 잘 돼 있다고 소문난 이웃나라도 경천동지의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날 새벽 산행을 위해 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일본에 지진이 났다는 뉴스를 그다지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배운 대로 세 개의 판(plate)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크고 작은 진동이 끊이지 않는 곳인지라 이전에 그러했듯 얼마간의 피해가 있더라도 곧 수습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하루 꼬박을 산중에서 헤매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뉴스 화면을 지켜보노라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얼마 전까지 누군가의 안락한 삶터였던 집이, 풍성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던 논밭이, 병원이, 학교가, 아니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불타고 쓰나미의 너울에 집어삼켜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소설가 공선옥의 산문집 제목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떠올렸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친구도,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땅도, 내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하늘도, 심지어는 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고, 그야말로 산다는 것 전부가 거짓말 같은 순간!

‘돈에 속고 사랑에 우는’ 인간세상의 일도 시시때때로 거짓말 같지만 자연의 혹독한 가르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간이 아무리 자연을 ‘정복’한 세상의 ‘지배자’인 양 오만방자하게 굴어도 결국엔 이 행성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불청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러니 남들보다 더 가지고 더 누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이 얼마나 맹랑한 거짓말인지, 그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아 안달복달하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헛짓인지가 가슴에 사무쳤다.

하지만 충격과 공포와 허무 속에서도 일체의 거짓 없이 오롯한 진실은 하나. 그래도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죽음은커녕 아직 삶조차 잘 모르는 열다섯 살의 아들아이는 세계 역사상 넷째라는 대지진 앞에서 “검은색보다 더 어두운 색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래서 이 같은 참상을 까맣게 모른 채 신나게 노래를 불러 젖히며 산행을 했던 일을 미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산새 소리도 잦아든 겨울 산에서 그가 소리 높여 불렀던 노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오브라디 오브라다 라이프 고우스 온….”

아무 뜻도 없는 레게풍의 단어들 끝에 이어지는 한마디…. 인생은 계속된다(Life goes on)! 불가항력으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삶터를 빼앗겨도, 언젠가 120억 년에 걸친 행성의 역사가 마무리되는 ‘최후의 날’이 올지라도, 마치 거짓말처럼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포에 사로잡혀 벌벌 떨며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는 대신 바로 지금 살아가고 있다는 단순하고 간명한 사실에 감사하는 것뿐이다. 그 감사란 과연 어떤 것일까? 언제나 그랬듯 철모르쟁이 아들이, 거짓말 같은 삶의 희망이 나를 가르친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냐고? 바로 우리 자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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