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신종플루가 대유행할 당시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로 일했다. 당시 의료 현장과 정부 대응책을 경험하며 많은 교훈을 얻었다. 신종플루의 효율적 진료체계 수립의 목적은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 제공, 치료 중 감염으로부터 의료인 보호, 환자의 건강 회복, 사망자 발생 최소화 등이었다. 지금의 구제역 사태에 대입해 보면 구제역 대처 시 구제역에 걸린 소, 돼지의 효율적 진료, 사망 동물의 최소화보다 구제역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방역이 강조되며, 경제 논리가 저변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명을 가졌지만 식용으로 사육되는 동물이기에 인간을 위해 적당한 공급을 유지하되 적절한 소·돼지 고기의 가격대가 형성돼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몰되는 소, 돼지의 눈망울과 자식처럼 키운 축산인의 눈물 어린 눈길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제역 진료체계 수립의 목표는 구제역이 수의학적 혹은 축산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 분석, 자원의 효율적 운용 수립, 구제역에 걸린 동물의 관리 지침, 감염관리 지침, 사망처리 지침 정비다. 이러한 내용의 매뉴얼 정비와 준수에 대해선 의문이 있었다.

구제역 매뉴얼은 발생 시 확산 방지, 조기 종식을 위한 처리기준 및 요령 등에 대한 방역 지침서로 구제역 발생 시 경계경보 ‘주의단계’를 발령하며, 발생 농장을 중심으로 방역대를 설정, 이동 통제 및 매몰 처분 등을 실시해 추가 확산을 방지한다.

언론에서는 구제역 매뉴얼의 문제점으로 구제역에 걸린 동물의 관리지침 및 살처분 문제, 구제역 의심 증상 시 지자체 방역관에 의해 실시되는 간이검사 시 초기 발견이 어렵다는 점, 발생지 500m 이내 살처분에 대해선 잠복기간 중 통제지역을 넘으면 속수무책이란 점, 현장 역학조사 시 차량, 인원 출입 기록의 의무화 없이 기억에만 의존하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재작년 신종플루 대유행 때도 비슷하게 지적된 문제점이다.

신종플루의 의심 증상 시 확진검사 대신 실시된 간이검사, 잠복기 시 환자 격리, 휴교 등의 지침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역학조사의 경우 전염병 신고체계의 행정적 어려움을 현장에서 호소했다. 이번 구제역의 전국 확산으로 인한 우제류 가축 전체에 대한 예방접종 실시 검토, 국내에서 확인된 구제역의 공기 전염 등을 고려하면 구제역 매뉴얼은 전면 보완될 필요가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국립수의과학연구원, 수의학계를 중심으로 범국가적인 구제역 매뉴얼을 새로 만들고 제2의 구제역 사태를 대비하되 신종플루 대유행을 경험한 의학계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아 더 이상 애처로운 소·돼지의 눈망울을,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안타까운 축산인의 눈물을 보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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