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밑 함박눈 쌓이던 날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나신 박완서 선생의 빈자리가 차갑게 느껴진다. 평소 근면·소박했던 삶은 작품세계로 이어져 허세나 가식, 거만 같은 정신적 독소를 우리 삶에서 속속 뽑아내는 이야기들은 모든 국민에게 큰 위안이고 자랑이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가난한 문인들의 부의금을 받지 마라’는 당부와 함께 문인장을 고사하고 끝내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 절차를 마무리 짓는 모습 또한 저절로 머리를 숙이게 만들다.

문학도였던 선생은 결혼과 함께 살림에 몰두, 5남매를 기른 후 40세에 등단하셨다. 요즘 말로 ‘경력단절’을 극복한 ‘재취업’ 여성이었다. 그 후 40년 동안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엄청난 양의 작품을 그것도 빼어난 수작들을 생산해내셨다. ‘토지’의 박경리, ‘혼불’의 최명희 같은 스케일이 큰 대하소설가와는 달리 박완서 선생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자리를 샅샅이 훑고 다녔다. 정치적·경제적 격동기의 한국 사회는 생활의 작가에게 대하소설 만큼이나 소재가 풍부한 작품의 무대가 됐으리라. 박완서 선생은 작품 제목대로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쳤다. 누가 더 잘살고, 누가 더 좋은 학교 가고, 누가 더 출세하는가에 혈안이 됐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정신적 긴장감을 조근조근 이야기로 풀어내 주었다.

그의 대표작 중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여성신문 창간 이듬해인 1989년에 연재됐던 소설이다. 주인공 차문경이 싱글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가부장제 결혼제도의 유치하고 비열하고 잔혹한 실상을 낱낱이 고발한다. 베스트셀러가 된 이 소설은 2003년 TV 드라마로 방영돼 다시 한 번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란 소설 제목은 당시 앞선 여성들이 쉽게 꿈꾸는 ‘평등한’ 결혼이란 것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꿈과 같은 것인지, 또 관습과 인습이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11년 다시 소설의 제목과 마주해 본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이젠 다른 답을 찾을 수 있겠다. ‘우리의 꿈은 이뤄지고 있다’ ‘우린 더 큰 꿈을 꿀 것이다’라고. 세상은 변하고, 혼자서 꾸면 꿈에 머물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는 걸 실감하는 이 시대에서 바라보는 박완서 작품 속 주인공은 더 고맙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고달프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여성들이 있어 이 시대의 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큰 어른이 떠나신 빈자리가 큰 공백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선생이 남기신 꿈 줄기를 어루만지며 다시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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