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의 부음을 듣고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다. ‘삼한사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추위는 길게 그리고 질기게 겨울에 눌어붙어 있다.

함박눈이 하얗게 내리던 날, 나는 작가 박완서 선생의 부음을 TV 뉴스로 접했다. 그 전날(1월 22일) 영면하셨지만, 소식에 기민하지 못하여 하루 뒤에 듣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분과 일면식도 없다. 그러나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작품을 통해 오래도록 지켜본 작가의 타계는 그런 내게도 아쉽고 허전하였다. 그래서 책장에 꽂아둔 그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만 바퀴 없는 이들의 편이다’를 다시 읽었다.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은 이유는 아마 겨울 추위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은 박완서 선생이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읽으며 경험한 ‘기이한 추위’에 관한 서술로 시작한다. 선생이 ‘남한산성’에서 가장 실감했던 부분은 추위였다. 바로 병자년의 추위, “김훈의 인정머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냉정한 단문이 날이 선 얼음조각처럼 살갗을 저미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 바로 그 추위였다. 그런데 그 추위는 마음이 아니라 몸이 시린 추위라고 했다. ‘남한산성’을 읽을 당시가 만추 무렵이고 이상 난동이 운위되던 때라서 추위와는 거리가 있었음에도 알 수 없는 혹독한 추위를 느꼈다는 것이고, 이 ‘기이한 추위’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유추해본 바, 그것은 그 해도, 병자년도 아닌 경인년(1950년)의 추위더라는 것이다.

선생에게 있어 경인년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가 다 그러하겠지만, 가족을 잃고 모진 추위와 굶주림, 불안 등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그 혹독한 경험이 선생에게 시간을 가로질러 경인년의 추위를 다시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작가에게 때로 트라우마는 창작의 근원이자 동력으로 작용한다. 박완서 선생에게는 경인년 그 전쟁의 모진 경험과 살면서 겪은 ‘참척’(慘慽)의 고통이 오래도록 글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글이 쓰라림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담담하게 그 응어리와 상처를 응시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치유의 힘이 깃들어 있어서다. 치유의 힘은 또 다른 사랑의 실천으로 치환되었다. 그는 유니세프를 통해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봉사했다고 한다.

올해 이상 한파가 계속되면서 가난한 사람, 헐벗은 사람들은 더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에게는 올해의 추위가 경인년의 그 모진 추위처럼 여겨질 수도 있으리라. 이런 때 그 추위를 녹일 수 있는 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이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박완서 선생의 말이 한결 더 명징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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