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엄성 존중, 해고보다는 적응·개선 기회 충분히 줘라”
도미한 문학도가 세계적인 인력관리 전문가로. 마닐라에서 세계57개국 6백50여 명 전문가와 함께 일해

 

인력관리 전문가 이순훈 씨는 다양한 국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인력관리,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인력 관리에 큰 관심을 표한다.
인력관리 전문가 이순훈 씨는 다양한 국제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인력관리,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인력 관리에 큰 관심을 표한다.
이순훈씨는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중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영문과를 마친 후 도미, 위스콘신의 리폰 대학에서 드라마 석사를 받은 후 지금은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파견인력관리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다. 이순훈 씨는 인력 관리를 담당하는 만큼 한국의 인력관리, 특히 여성의 인사배치에 관심이 많았다. 반면 필자는 국제적 조직의 인력관리 규율이 궁금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이 분야에서 알게 된 서로의 견문을 이야기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해 다시 묻곤 하는 통에 인터뷰는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이니 업무는 비슷한데 사람을 대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천양지차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이순훈씨와의 대화 내용을 간추려 보았다.

간혹 잘못 전달한 부분도 있을까 염려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그쪽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필자의 잘못이다. 솔직히 이야기하느라고 애쓰신 이순훈씨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국적은 어디인가? 국제적 기관에서 일하자면 한국 국적으로는 힘들다고 들하던데.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범세계적 기관이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준외교관 비자(G4)가 발급된다. 구태여 미국영주권을 받을 필요가 없다.”

-직장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IBRD라고 흔히 줄여서 부르는 세계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의 산하 기관인 아시아개발은행(ADB:Asia Development Bank)의 인력관리부에서 일한다. ADB는 마닐라에 있고 세계 57개국에서 온 6백50명의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총 직원수는 2천여 명이다.”

-가족도 마닐라에 함께 사는가?

“아니다. 이일을 맡게 되면서 이산 가족이 되었다. 딸 둘과 남편은 워싱턴에 있다. 국제 전화비와 비행기 값이 엄청나게 든다.”

-전공이 영문학과 드라마인데 인력 관리라니 좀 뜻밖이지 않은가?

“다들 그렇게 얘기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드라마라는 것이 뭔가? 문학이란 것이 뭔가? 결국 인간들의 이야기 아닌가? 드라마를 보면 인간들의 갈등, 갈등을 푸는 과정 등이 주제다. 인력관리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에서 배운 인간 행동 관찰과 분석이 일에 도움이 된다.”

-요즘 우리 나라는 성폭력이 큰 이슈다. 직장 내 성차별이나 성폭력은 어떻게 관리하는가?

“우선 신입사원 연수 때 성차별 및 성폭력에 대한 회사 규정(sexual harassment policy)을 소개한다. 여성 또는 남성이라서 겪는 차별 대우는 모두 여기에 해당이 된다. 성에 관계없이 차별하거나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경우에는 집단 해코지 규정(harassment policy)이 따로 있다. 일단 신고를 받으면 자료나 증거를 찾는다.

그런 사례가 있어도 사실 입증이 힘들다. 상황이 너무나 다양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사자가 불편하다고 호소해오면 조사를 시작한다. 사내 사람으로서 조정관(controller, coordinator)을 임명하는데, 같은 부서나 다른 부서 사람일 수도 있다. 관리부의 추천을 받아 인사부가 선발한다. 신용도가 좋고 인격이 있으며 중립적인 판단이 가능한 사람이 주로 조정관을 맡는다.

조정관은 인사규정에 맞춰서 상황을 조사하고 판단하여 처리한다. 이 처사에 만족을 못하면 사내의 옴부즈맨에게 가서 탄원한다. 옴부즈맨이란 공식적인 직위로 사장의 직속이며 은퇴 직전의 사람이 맡아 향후 자신의 경력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일을 공정히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회사 내에 마련된 신원장치(grievance process)이다.”

-그들이 정확한 판단을 내려 징계를 가하는가?

“옴부즈맨이나 조정관은 공정한 입장에서 양측을 보려고 애쓴다. 감정적이 되지 않고 이성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을 대신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해결점에 이르도록 도와 줄 뿐이다.”

-인사규정이라고 했는데 세계은행에서는 인사고과를 어떻게 작성하는가?

“업무 평가(performance evaluation)는 다음의 다섯가지를 기준으로 한다. 우선 책임감이 있느냐를 본다. 즉 일을 계획대로 납기일에 맞추느냐, 못 맞추느냐부터 알아본다. 맞출경우에도 얼마나 넉넉히 일을 끝내느냐를 살핀다. 둘째로 작업상의 기술을 평가한다. 일을 해내는 솜씨를 보는 것이다. 셋째로 팀워크를 보는데 혼자만 잘해서는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한다. 넷째, 의사전달의 능숙도를 평가한다. 오해없이 마찰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프리젠테이션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다섯째, 리더십이 있는가를 본다. 이런 객관적인 규칙과 기준을 성문화된 사규로 정해놓고 있다.”

-인사고과는 누가 작성하는가?

“바로 직속상관이 한다. 그리고 그보다 한 등급 위의 상관이 추가 작성하고 그것을 최종상관이 본다. 따라서 전혀 주관적인 의견을 적을 수는 없다. 세 단계를 거치면서 공감을 얻는 평가가 나오게 되어있다.”

-그래도 인사 고과에 대해 승복을 못하는 사람이 있을텐데?

“그렇게 되면 재심사(administrative review)를 한다. 관할부서에 속하지 않는 공정한 인물을 임명해서 심사한다.이것을 항소위원회(appeal’s commitee)라고 한다. 여기에도 불만이 있을 경우에는 행정 재판(administrativetribunal)으로 간다. 여기서 심사하는 사람은 항소자와 다른 국적인 사람을 임명하여 공정한 심사를 하도록 배려한다.”

-아주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다.

“그렇다. 모든일은 공개(openness)되고 적법한 절차(do process)를 거쳐서 결정되며 투명(transparence)하게 처리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일을 잘 못하는 직원이 있으면 해고하기도 하는가?

“우선 구두로 경고를 한다. 몇차례 경고했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으면 메모로 전달한다. 메모는 쪽지가 아니고 비공식 문서라고 이해하면 된다.그리고 업무능력 개선을 위해 연수도 보낸다. 그래도 안 되면 일정 기간을 정해주고 개선을 시행할 것을 최종 통고한다.”

-그냥 해고해 버릴 수도 있을텐데.

“아니다. 사람은 귀한 것이다. 충분히 적응하고 개선할 기회를 준다. 도태되지 않으려면 꾸준히 자기개발을 해야한다. 세계개발은행에서는 1년에 1주일 연수신청이 가능하다. 허가를 받으면 연수를 갈수 있다. 외부연수와 내부연수가 있는데 보통 외부연수를 나간다. 타 회사에서 교환 근무를 하면 더 많이 배워온다. 자신이 뭘 더 배워야 하는지는 상관과 의논하여 결정한다. 실력이 없으면 진급이 안되니까 오래 남고 싶으면 발전해야 한다.”

-급여는 만족할만한가?

“세계에서 최고이다. 유엔 산하 기구보다 많은데다 국제기구는 소득세를 안 내도 된다. 급여 외 복지 부분도 우수하다. 매년 1번씩은 모국 방문을 할 기회를 준다. 퇴직금도 있고 연금도 있다. 정년은 62세이나 55세가 되면 조기은퇴를 결정할 수 있다. 이때 75법이나 85법을 적용한다. 즉, 나이와 근무년수를 더한 것이 75나 70이 되면 조기 은퇴(early retirement)를 신청할 수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70법을 쓴다. 또한 나이 더하기 근무년수가 80이나 85가 되면 만기 퇴직(full retirement)을 신청한다. 역시 아시아개발은행은 80법을 쓴다. 만기 퇴직하면 연금이 더 많다.”

-진급은 어떤가?

”일단 입사하면 전문가 수평제도이기 때문에 높은 직함은 안준다. 그냥 전문가(specialist)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외부의 고위 관리자나 행정가 출신들이 세계개발은행에 많이 온다. 우리나라도 이제 채무국이 아니므로 당당히 지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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