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카 휴스턴의 데뷔작으로 '96 깐느영화제 화제작. 12세 소녀에게 가해진 의부 폭력 조명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독립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영화 . 이에 불구하고 모녀간에 오가는 말없는 이해가 눈물겹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독립적으로 자녀를 양육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이에 불구하고 모녀간에 오가는 말없는 이해가 눈물겹다.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스러운 범죄중 하나는 아마도 아동에 대한 구타와 성폭력의 결합일 것이다. 이 범죄에 대한 은폐뿐 아니라 외면까지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감독의 탄탄한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곧 개봉될 예정이어서 아동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더불어 진지한 사고를 환기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더구나 이 영화는 사회적 약자인 홀로 된 여성의 자녀양육과 새출발이 얼마나 험난한 지도 리얼하게 보여줘 미혼모와 이혼녀가 증가 추세에 있는 현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도 하다.

 

로 감독에 입문한 안젤리카 휴스턴.
<돈 크라이 마미>로 감독에 입문한 안젤리카 휴스턴.
최루성제목인<돈 크라이 마미>(Don’t cry mommy)로 선보일 이 영화의 감독은 거장 존 휴스턴의 딸로서 아버지의 작품 <프리지스 오너>로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던 명연기자 안젤리카 휴스턴. 그의 연출 데뷔작인 이 영화는 지난 해 깐느영화제에 출품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 개봉된 <돌로레스 클레이본>, <조지아> 등으로 우리에게 낯 익은 연기파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와 3천대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아역배우 지나 말론이 주연을 맡았다. 휴스턴 감독은 제작 전에 특별 리서치를 의뢰, 전 미국 어린이들의 반수에 가까운 47.5%가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 자료로 확보하는 진지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문인지 아동 구타와 성폭력에 대한 묘사가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이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폭력으로 인한 인간성 피폐에 대한 저항감을 지닌 이들이라면 누구나 꼭 보아야 할 영화로 평가된다.

영화는 엄마의 기구한 삶이 어떻게 딸의 불행으로 이어지는 지를 차분하게 그러나 심도깊게 전개시켜 나간다. 캐롤라이나주의 순진한 시골처녀 애니(제니퍼 제이슨 리)는 한때의 사랑으로 미혼모가 된다. 그러나 애니가 사려깊은 남자 파슨즈를 만나 결혼하면서 그의 인생 첫 페이지를 구긴 것으로 은연중 간주되던 딸 본(지나 말론)은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만끽한다. 이것도 잠시. 파슨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애니가 또다시 홀로 파슨즈의 딸을 낳은후 독점욕이 강한 남자 글렌과 재혼하자 상황은 역전된다. 글렌은 본과 애니의 친밀한 관계를 못참아하는 데다가 아들에 대한 열망이 애니의 유산과 연이은 불임으로 좌절되고 실직까지 당하자 그 걷잡을수 없는 분노를 의붓딸 본에게 퍼붓게 되는데...

본이 엄마와 함께 산 12년간의 고통을 나레이션을 통해 담담히 얘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돈 크라이 마미>. 선전문구처럼 사랑과 모성 사이의 갈림길에서의 비장한 선택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암암리에 묵인할 수 밖에 없는 가정폭력의 은밀성과 폐쇄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영양가있는’ 감상 포인트.

애니를 어떻게든 친족공동체로부터 떼어놓아 고립시키고 본을 구타하고도 애가 부주의해서 나무, 현관 등지에서 떨어졌다는 거짓말을 일삼는 폭력성 남편 글렌. 자신이 조심성이 없어 아빠의 기분을 건드려 맞게되는 것이라 애써 자위하며 엄마의 행복과 가정의 평안을 깨뜨리지 않으려 고통을 삭이는 조숙한 본의 태도. 이 모든것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끊기 힘든 연결고리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딸이 구타당하고 성폭행 당하려는 순간까지 목격한 애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렌의 “다시는 안 그러겠다”, “사랑하고 있다”등의 애원에 못이겨 다시 그의 품에 주저앉고 마는 결론은 관객들의 한숨어린 탄식을 절로 자아낸다. 이런 영화속 모든 상황설정이 전세계에 걸쳐 일어나는 가정폭력이 왜 완전히 종식되지 못하고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는 지를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라스트씬에서 엄마로부터 비로소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받아들고 엄마가 자랑스럽다며 엄마처럼 강하게 살 것이라고 다짐, ‘캐롤라이나의 사생아’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본의 절규는 암울한 전체 톤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선사한다.

6월 28일 오후 3시 강남 씨네하우스 10층 아마데우스홀에서 애독자 4백명 선착순 무료초청 시사회, 7월 초 개봉 예정. 문의 02) 581-3492, 272-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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