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 재편·기술혁신·정경유착 단절로 ‘재도약’기회 삼아야

한국 경제가 계속된 불황으로 탈진현상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한보사태 이후 계속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경제운용은 뒷전으로 밀려 우리 경제는 심각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실업자는크게 늘어나고 있고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되면서 국민 한사람 당 외채도 2백만원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 일본등 주요 선진국들이 전반적인 경기호황을 누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우리의 불황은 경제 내부의 구조적 문제때문이라고 보아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높은 임금, 높은 금리, 높은 땅값, 높은 물류비용 등 ‘4고’와 낮은 효율, 낮은 기술수준, 낮은 부가가치 등 ‘3저’의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국제시장에서 우리 상품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수출부진과 경기침체현상이 가속화되어 왔다.

더욱이 우리 수출은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업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데다가 이 주력 업종들이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 결과 주력 품목의 국제시세가 하락하면 곧바로 수출액이 감소하고 일본 엔화 환율의 움직임에 따라서 우리의 수출경기가 좌우되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구조적인 수출의 부진은 기업의 채산성을 악화시켜 투자능력 감퇴→실업증가→구매력저하→소비위축의 악순환을 유발하게 되었다. 여기에 개정노동법 등에 따른 근로자의 신분불안까지 확산되어 소비심리는 더욱 위축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부 계층에 의한 과소비는 경기불황에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백화점이나 수퍼마켓 등 소매점들의 전반적인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수입 및 대형승용차, 수입가전제품, 수입의류, 수입골프용구, 수입화장품, 그리고 사치성 해외여행 등에 과소비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와 같이 ‘과소소비’와 ‘과잉소비’가 공존하는 소비의 극단적인 양극화현상 때문에 경기회복은 더욱더 어려워지고있다. 최근의 과소소비는 자발적인 소비절약이 아닌 소득수준의 저하와 구매력 감퇴에 따른 불가피한 긴축이기 때문에 저축증대를 동반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과소소비는 기업의 재고를 누적시키고 생산활동을 외축시켜 경기회복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한편 외제수입품에 대한 과잉소비는 국산품의 생산의욕을 떨어뜨리고 경상수지 악화를 유발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더욱이 과소비는 일부 부유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계층간 소비행동의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심리 또한 정국불안, 장래 경기에 대한 비관, 한보·삼미 등 대기업의 연쇄부도, 쌍룡·진로·대농그룹의 심각한 자금경색 등으로 당장 회복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경영경험이 부족한 젊은 2세 경영인의대거 등장과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해 일부 대기업은 경영위기를 자초했고 경기침체를 부채질 하고 있다.

한편 정부의 경제정책도 정치논리에 좌우되어 일관성을 잃고 우왕좌왕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동법파동으로 노-사, 노-정관계가 악화되고 근로자들의 근로의욕은 땅에 떨어졌다.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로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은 찾아냈지만 30조원 이상의 돈이 지하로 숨어 버려 오히려 자금 흐름의 왜곡이 심화되고 일부 계층의 과소비만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더욱이 세계무역기구 (WTO)의 출범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의 무리한 가입으로 인해 개방의 파고가 더욱 높아지자 그에 따른 정책대응에 허둥대고 있음도 답답한 일이다. 최근의 노동법 파동이나 소비절약운동 파동에서 경험했듯이 개방화시대에는 국내정책도 국제적으로 시비의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정책수단 선택의 폭도 좁아져서 과감한 경기회복 정책을 쓰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한보사태 이후 국내은행의 신용도 아울러 추락, 금융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 은행간 합병 가능성 등으로 주부들이 국내은행에 예금하는 것을 꺼리는 풍조까지 나타나고 있다.

결국 국내 경기의 회복은 이와 같은 국내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외부여건변화에 편승하는 방법 이외에는 별로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최근들어 외부여건 변화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 4월이후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인 반도체의 국제시세가 소폭 이나마 인상되고 국제 원유가격은 인하되어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또한 5월 들어서는 일본의 엔화가 강세로 발전하면서 수출전선에 청신호를 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의 불황은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된 구조적 불황의 성격이 강한 만큼 외부여건 변화에 의한경기회복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고 각종 정치스캔들과 대선일정까지 겹쳐 경기의 자생적인 회복기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불황을 재도약을 위한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경유착의 단절을 위해 정부의 각종규제를 완화하고 경제논리에 의한 경제운용의 틀을 구축해야한다.

근본적인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의 예도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지속적인 기업의 구조 재구축과 경영합리화 노력을 기울인 결과 1992년이후 6년째 경기호황을 구가하고 있고, 일본도 산업구조 조정을 통해 그간의 거품을 제거하고 작년부터 경기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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