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성도서관 개최… 동일노동 동등임금, 피임·낙태의 자유 담아내
위의 글은 영국 역사상 최초로 열린 ‘전국여성해방콘퍼런스’(National Women′s Liberation Conference)의 한 장면을 묘사한 기사다. 1970년 2월 옥스퍼드에 있는 러스킨대학에서 열린 콘퍼런스는 전국 각지 출신의 500여 명의 여성 모임의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여성문제에 대해 토의한 자리였다. 콘퍼런스 소식을 전한 당시 텔레그래프가 뽑은 제목의 ‘Squabbles’는 ‘하찮고 소모적인 다툼이나 논쟁’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가장 기념할만한 여성운동의 역사적 장면에 대한 기사에서조차 ‘성적 편견’을 지워낼 수 없었던 당시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고 있다.
그로부터 40년 후, 당시로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눈부시며, 여러 분야로의 진출 또한 커다란 사회적 흐름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를 이뤄낸 여성운동은 오히려 자신의 몫을 다했다고 인정받기는커녕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불평을 듣고 있기도 하다.
여성도서관은 이번 전시에서 70년대 이후 영국 내의 여성운동의 흐름을 ‘운동의 탄생’ ‘운동의 발전’ ‘운동의 유산’ 이렇게 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선보이고 있다. 1974년에 결성된 ‘See Red Women′s Workshop’은 20여 년간 꾸준히 포스터, 엽서, 달력 등의 제작을 통해 여성문제를 제기했던 대표적인 활동 그룹이다. ‘자매들이여! 우리 일상 곳곳의 문제들’(Sisters! Question every Aspect of Our Lives, 1975)이라는 포스터 작업은 일상 속의 성희롱을 비롯한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을 신랄한 유머로 꼬집은 작품이다. 미스월드 대회에 반대하는 팸플릿(1970) 및 달콤한 결혼 뒤에 숨겨진 여자들의 지난한 가사노동의 현실을 코믹하게 포착한 ‘왜 아내가 되려는가’ 캠페인(1976) 포스터 역시 오늘날 다시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호소력이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70년대의 구호를 실현하는 데에는 정기 간행물도 빠질 수 없었다. 3만 부까지 팔리기도 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Spare Rib’, 그에 못지않게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Shrew’(women′s liberation workshop에서 발행) 등이 전시작에 포함되었다.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는 데 머물지 않은 것은 이번 전시회의 미덕 중 하나다. 전시의 세 번째 섹션인 ‘운동의 유산’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다. 1970년 전국여성해방콘퍼런스 당시 여성들이 채택한 공식 요구사항 4가지가 ▲동일노동에 대한 동등한 임금지급 ▲동등한 교육과 직업의 기회 ▲피임과 낙태의 자유 ▲공동체 내에서의 24시간 양육시스템이라는 것도 당시 여성들이 처해있던 불평등한 상황을 대변한다. 그러나 영국에서 이미 40년 전에 공표한 여성들이 처한 문제가 지금 세계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아직도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인 것은 아이러니다.
여성도서관은 영국 여성들의 생활, 문화, 역사, 사회운동에 대한 6만점 이상의 간행물을 소장하여 관리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여성운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926년에 밀리센트 포세트(Millicent Fawcett)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현재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의 부설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