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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 김설(28)씨의 장편소설 〈게임 오버〉가 출간되어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분단 시대의 희생을 〈광장〉의 이명준이

대변했고, 산업화 시대의 전형이 ‘난장이’ 일가라면, 〈게임 오버-

수로 바이러스>의 수로는 가벼우면서도 폭력적이고 느끼면서도 생각

하지 않으며 현실 체험보다 가상의 경험을 보다 실감하는 세기말 풍

조를 대변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주인공 천수로. 그는 가난한 독신여자다. 백수로 지내던 그는 일자

리를 알아보러 나갔다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만난 한 여자로부터 그

여자의 친구에게 전해달라는 선물 꾸러미를 받는다. 얼떨결에 수고비

로 10만원이나 받았지만, 호텔 이름을 혼동한 그는 다른 호텔에 갔다

가 시간이 없다고 대신 전해 달라던 던 그 여자를 본다. 그 여자를

따라나선 수로는 어처구니 없게 그 여자가 자동차로 뛰어드는 현장을

목격한다. 여자의 죽음을 자신이 부탁받은 그 친구에게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에 천수로는 친구가 묵고 있다는 천국호텔 1313호실로 향한다.

그 방에는 두 구의 시체가 피범벅이 된 채 나뒹굴고 있다. 놀라는 것

도 잠시, 점점 크게 들려오는 발소리에 침대 밑으로 기諍榕載?수로

는 범인일지도 모를 남자의 검은 구두만을 본다.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지문을 지우고 문제의 종이 가방을 들고 비상

계단을 통해 호텔을 빠져나가 집으로 돌아온 수로는 선물을 전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뒤척이다 혹시하는 생각에 종이 가방을 열어보니

하얀 가루가 밀봉되어 있다. 순간적으로 그는 자신이 마약 사건에 연

루된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맛을보니 밀가루. 그는 밀가루로 수제비

를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수로가 가지고 있는 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르는 폭력배 일당은 수로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수로는 여

러 우연의 상황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가령, 그는 정체 모를 여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있었고 그 여자의

죽음에서 달아날 수도 있었으며 호텔 방의 살인 사건을 보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다. 또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아주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단 3분만이라도 인생의 미로게임에서 영웅이 되고 싶은,

단 3분이라도 나 자신을 죽여 없애버리고 싶은” 수로는 이 세상의

견고한 벽을 향해 나아간다. ‘이 게임은 내가 만들어 가가는 것’이

라 溯?수灌? “마치 영화 속의 여주인공처럼, 가슴속에 묻어둔

잠재력이 용솟음 쳐 능란하게 위기를 헤쳐나”가며 상황을 역전시킨

다. 조직원 중의 하나를 인질로 삼은 그는 남자인질에게 ‘마돈나’

라 이름 붙이고 마음껏 조롱한다. 사건은 범죄 조직간의 세력 다툼으

로 번지고, 야구장에서의 범죄 조직들과 경찰의 일대 격전으로 사건

은 마무리된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 중간 중간 끼어드는 ‘game over’. 극에 치달

은 사건은 이 간단한 문구로 반전된다. 이런 반전의 효과로 작품은

한 편의 액션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견 가볍고 흥미로워

보이는 이 작품엔 그러나 작가의 신랄한 세계 비판이 깔려 있다. 작

가는 액션 비디오를 만들어 보여주고 그것을 즐기도록 유도하지만,

그 비디오의 그림들이 바로 비디오적 세계가 얼마나 더러운 것인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 세계는 바로 가난하고 독신인 한 여성의 삶이

얼마나 버겁고 황폐한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삶은 어쩌면 미로찾기의 연속인지도 모릅니다. 막다른 벽에

부딪치면 다시 빠져나올 궁리를 하고 수많은 우연을 선택하는. 그렇

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세계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세계의 견고한 틀이지요. 아직까

지 이 세계는 가난한 독신 여자, 게다가 외모도 별 볼일 없는 여성에

게는 거대한 벽이라고 생각해요.”

김설씨는 이후로도 ‘바이러스’시리즈를 통해 길은 막혀 있지만 출

구는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구조적 모순과 싸워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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