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졸업식 파문과 부산 여중생 사건을 보면서

오늘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눈 맞춤 시간은 몇 분이었을까? 아침 등교하는 자녀의 기분이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자녀가 하고 나간 헤어스타일이나 어떤 반찬에 많이 손이 갔는지는 기억할 수 있는가? 관심 영역이나 친구들의 이름은 몇 명이나 알고 있는지? 최근 한 달 동안 대화한 적은 있는지?

우리는 가족마저도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오늘의 기분은 어떠한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너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월 ‘알몸 졸업식’ 파문으로 뉴스를 보기 겁났던 때를 기억하는가? ‘부산 여중생’ 사건은 어떠했는가? 두 사건 모두 더 이상 우리나라에서, 아니 지구촌 세상에서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건들이다.

‘부산 여중생’ 사건의 피해자 어머니 진술을 들어보면,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상하게 딸의 속옷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냥 동네에 잡도둑이 있나 보다 했단다. 어머니는 목 놓아 울었다. 속옷이 없어졌던 때부터 경찰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고. 딸을 혼자 두는 게 아니었다고. 그렇다고 마냥 혼자 두기도 어렵겠지만….

‘알몸 졸업식’ 피해자 부모들의 진술도 마찬가지다. 졸업식이 끝나고 친구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나가기 싫어했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했다. 평소 학교를 그만 다니면 안 되겠느냐는 말도 있었다.

뉴스에 나오는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더 이상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마치 부모의 잘못으로 인해 사건이 벌어졌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제 서로를 향한 관심(關心)과 관찰(觀察)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의 상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단서들이 일어나고 사전 예고장처럼 우리에게 접수된다. 우리가 그것들을 유념해서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놓치는 것뿐이다.

자녀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부모를 자주 만난다. 부모-자녀 간 대화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도통 입을 열지 않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부모는 아이가 입을 열고 있을 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행동은 유목적적이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당시에 그 사람은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자녀의 행동을 눈여겨 살펴보는 것이 관찰(觀察)이다. 나아가 자녀가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관심(關心)이다.

관심(關心)과 관찰(觀察)은 같은 듯 다른, 그리하여 한데 어우러지면 좋을 부모의 필수조건이다. 아니 부모의 필수조건을 넘어서 인간이 갖추고 있어야 할 도리라고도 말하고 싶다. 

늦지 않았다. 오늘 내 자녀, 그리고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의 얼굴 표정이 어떠한지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다음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눈여겨보자.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깊이 있게 생각해보자.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關心)과 관찰(觀察)을 기울이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접하는 뉴스가 보다 따뜻해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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