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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정/한국정신대연구소 부소장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남과 북의 여성들이 함께 만났다. '일본군

‘위안부’문제와 여성의 인권에 관한 남·북·일 3자회담'에서였

다. 이 자리에서 남북 여성들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

를 맞대고 이제까지의 성과를 교류하고, 해결을 앞당기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때에 종태위의 상무위원이 산을 넘고 들을 넘어 할머니를 찾아

다녔어요. ‘어디서 그런 소리 듣고 왔나, 나는 아니다..’하며 돌아

앉는 할머니에게 세 번을 찾아가 드디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

요.”

93년 여름에 북한에서 최초로 입을 연 이경생 할머니를 조사할 때

의 이야기다. 북한 종태위(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

책위원회) 박명옥 부위원장은 초기에 할머니들로부터 증언을 이끌어

내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남이나 북이나 여성에 대한 순결의식이 강조되는 가부장제 사회라

는 점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92년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나오기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오랜 세월 가슴 밑바닥에

한을 쌓아오며 살아오던 할머니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쉬쉬해왔지

만, 차츰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발언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도 많은 수의 할머니들은 꽁꽁 숨어 자신

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한에서 신고한 할머니들

(올 11월 현재 1백89명) 중 상당수는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세상을 향해 닫아놓은 고통의 빗장을 벗길 수 있었다. 자신이 겪은

참담한 고통에 자신의 과거를 숨기며 말 못하고 살아온 오랜 세월의

고통이 더해져 좀체로 치료할 수 없는 마음의 병이 되어버렸다.

북한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은 아주 드물다고 한다. 그런데

피해자 할머니들 중 상당수는 담배를 피운다. 그분들이 혼자 살거나,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거나, 화를 잘 내는 등 여느 할머니들과

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안타깝다고 북한 대표들은 전한다.

북한에서 현재까지 신고한 피해자는 모두 2백16명. 남한의 신고자

에 비해 약간 웃도는 수치이다. 이것은 북한에 피해자가 더 많기 때

문이라기보다는 민간 차원으로 조사와 연구, 운동이 주도되는 남한

과는 달리 북한은 정부 차원에서 조사 발굴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각 시·도·군 행정위원회가 종태위의 조사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이렇게 조사한 할머니들 40명의 증언을 엮어 '

짓밟힌 인생의 외침'이라는 증언집을 펴냈다. 이 책은 피해자들의

군 ‘위안부’로서의 경험과, 일본 정부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우리가 펴낸 첫 번째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

선인 군위안부들'(93년 ,한울출판사)을 본 북한 당국이 자극을 받아

펴낸 것이라고 박 부위원장은 말했다. 우리의 연구 조사 활동과 해

결 운동이 아시아 여러 피해국들에게 이미 상당히 고무적인 역할을

했음은 알고 있었지만, 북한도 우리의 조사와 해결 방법을 상당히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피해자인 북한의 곽금녀 할머니(75세, 함경남도 단천 거주)는 열여

섯 살때 중국 목단강 유역 목룡의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지옥같은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고 증언했다. 길게 땋았던 머리를 짧게 잘

린채 일본 이름 ‘레이코’로 일년 반을 그 속에서 갇혀지내야 했

다. 도착한 첫날부터 군인들이 밀려 들어왔는데, 그날밤 끌려온 여자

들의 울음 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위안소 전체로 퍼져나갔다. 할머

니는 군인들에게 반항하다 팔목이 부러지고, 사타구니도 칼에 찔려

그 상처가 아직도 남아있었다.

“일본 군대들은 우리들을 그런 곳에다 몰아넣고 그런 악독한, 눈으

로는 보지못할 개짓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만 생각하면 심장

이 떨리구 그저 막 사족이 까부라집니다.”

곽 할머니는 울분을 못이겨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이건 반드시 일본 정부에서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걸 해결을 안하

면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라도 원한을 갚겠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선

생님들도 가시면 투쟁을 해서 빨리 해결을 짓게 해주십시오. 여성들

의 입장은 똑같지 않습니까?”

피해자들의 고통은 남과 북 다름없이 이토록 지속되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한다고 해서 이들의 고통이 완치되지는 않

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치유노력은 보여야한다. 이들의 고통이

지속되는 한, 그리고 지구상에서 무력분쟁하의 성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일본군 위안부문제는 과거사가 아니라 영원히 현재 진행형

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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