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 직전 이희호 여사와의 인터뷰(여성신문 제452호)에서 이 여사는 “남편은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해 생각하지 않는다. 저보다 더 여성을 배려하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쓰는 것은 사회적 문제를 남녀 갈라 생각하기보다 ‘인간’에 대한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며 “인간에 대한 투철한 평등의식을 가진 사람”으로 설명했다. 이후 취임 후 창간 10주년을 맞아 이루어진 인터뷰(여성신문 제500호)에서 이 여사는 “대통령 자신이 여성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성문제는 가히 섭섭하지 않게 풀어갈 것”이라 역설했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취임 직전 당선자 신분에서 여성계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간 차별을 타파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는 대통령”임을 자부하며 직장 내 차별 타파, 채용·승진에서의 여성 일정비율 할당, 형사상으로도 여성폭력을 제어할 제도 마련을 약속한 바 있다.
국민의 정부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을 역임한 신낙균 국회 여성위원장은 “KBS 여성언론인들의 진급이 어려울 때 영부인이 관심을 가져줘 길이 열리게 됐다”고 회고한다. 남녀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당내에서조차 역풍이 심할 때도 부부는 국민회의 고위 관계자를 설득해 법안 통과를 물밑 지원하는 등 “여성정책이 제대로 앞으로 나가지 못할 때 늘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여성신문 제922호).
62년 “사회적 지위도, 집도, 재산도 하나도 없을 때 결혼”해 신혼 9일만에 남편이 정부전복 혐의로 붙잡혀가는 등 남편과 함께 ‘인동초’의 삶을 인내했던 이희호 여사. 그런 그지만 87년, 92년 대선에서 남편이 연거푸 낙선하자 크게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97년 남편이 대선 4수를 결심하자 곁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한 지인은 “김대중 정권 지분의 40%는 이 여사의 것”이라 단언하기까지 했다(여성신문 제922호).
수감 시절, 아내에게 보내는 옥중 편지의 첫 머리를 언제나, 변함없이 “존경하는 당신”으로 시작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아내와의 관계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란 상투적인 결혼식 문구가 사실은 철저히 평등하고 동지애적인 부부 관계에 기반할 때 가능함을 방증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