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성희롱 전담 인력 축소에 반발

현병철(65)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20일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현 위원장은 취임사에서 “인권위가 지난 7년간 쌓은 성과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며 “기본적 자유의 실질적 보장, 아동·노인·경제적 약자의 인권 향상, 다문화 사회의 인권 증진, 사회적 약자의 차별 시정 강화라는 목표들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인권위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온 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인권단체들은 “신임 인권위원장 스스로도 인권 현장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인정할 만큼 인권에 대한 전문성과 감수성이 부재한 인물”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은 “단순히 위원장 개인의 자질 유무를 떠나 인권위 조직 축소 유지를 전제로 한 인사라는 점에서 정부가 우리 사회의 인권을 개선시킬 의지가 없음을 보여줬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성단체의 가장 큰 고민은 성차별과 성희롱 업무의 축소다.

정부는 지난 1월 인권위 조직 30% 감축안을 제시한 데 이어, 3월 법 개정을 통해 인권위 직원 208명의 21%인 44명을 감원하고 종전 5본부 22팀을 1관 2국 11과로 축소 개편했다. 이에 따라 성차별 시정 업무와 성희롱 진정 업무를 담당하던 인력도 절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김민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지금까지는 인권위가 개별 사건마다 직접 조사하고 각 사업장에 권고를 했지만, 인력이 부족해지면 큰 담론 위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성희롱 예방교육이 일반화됐음에도 구체적인 사례로 들어가면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권위 축소 유지를 전제로 한 이번 위원장 임명은 우리 사회의 인권 후퇴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도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삶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알게 모르게, 또는 관행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침해받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 인권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인권 후퇴 현상으로 지난해부터 달라진 군대 문화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군대에 다녀온 남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면 재작년까지는 일요일에 쉬고 인권교육도 받았는데, 지난해부터 일요일에도 흙을 파고 메우는 일을 시킨다고 하더라”며 “군대에서의 무의미한 강제노동은 남성들에게 무의식적 적개심을 갖게 하고, 이것이 쌓여 여성이나 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단 군대문화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지난 10년간 어렵게 쌓아온 인권국가 이미지가 최근 1년 사이에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이는 국제 외교와 무역에서 치명적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인권은 이념 논쟁이 아닌 경제적 관점으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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