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라 그랬겠지만 대통령의 14차 라디오 연설의 주제는 ‘가족’이었다. “가족은 용기와 힘의 원천이고 희망의 샘”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일단 생계가 위협받는다. 요즘 해고되는 근로자 중 98%가 여성이다. 일자리가 있는 여성도 남성의 67.7%밖에 받지 못한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었어도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이다. 남편들이 해고되고, 도산하면 어머니들이 생계전선에 나서게 되지만 일터의 현실은 이렇다. 고용의 안정, 경제난 해소의 소용돌이 속에서 마지막 희망의 보루인 가족은 언제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사회구조가 복잡해졌다. 외국인 100만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는 농촌 총각 10명 중 7명이 외국 여성과 결혼한다. 전체 결혼 중 8.6%가 외국 여성과의 결혼이라고 한다(여성부, 2008년 자료). 또 탈북자의 수가 1만5000명을 넘어섰다. 다른 민족,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사는 공존의 기술이 필요하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초등학생 6~7명 중 한 명이 외국인 부모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머릿속은 단일민족의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획일주의와 배타주의, 우물 안 개구리식의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외국인과 새터민이 앞으로 가정을 일구어나가면, 우리나라 전체가 다문화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복잡해진 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정책과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일이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예산과 인력을 쏟아 부어도 외국인 신부나 새터민을 인격으로 존중하고 마음으로 배려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가정폭력과 사회적인 따돌림은 계속될 것이고, 그 피해자들은 가슴에 한을 새기며 성장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 말씀대로 가족은 우리의 희망이지만, 모든 가족이 저절로 그렇게 사랑하고 격려하는 천사의 구성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 안에서도 서로 배려하고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의 소통이 없다면 가족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원천이고 숨 막히는 벽이 될 것이다.

최근 개봉 첫날부터 관객 수십만을 모았다는 영화 ‘박쥐’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는 가족을 위장해서 가족과 온 동네 사람을 죽이고 피를 빨아먹고, 끝내 자멸하고 만다. 소통하지 못하고 신뢰할 수 없는 동거인이란, 결국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가정의 달, 가족이 온전한 사랑과 신뢰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또 우리 사회의 우리와 다른 가족을 받아들이는 연습도 더 열심히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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