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관계로 풀어낸 여성학 강좌 인기
혼전 순결 등 대학생 눈높이 교육 호평

‘연애 관계’로 풀어낸 대학가의 여성학 강좌가 인기다.

대학생들의 공통 화두인 연애 문제를 통해 성역할 고정관념과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인식을 높이고, 여성학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강사들은 특히 “요즘처럼 취업 전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는 대학생들에게는 연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향후 삶과 가치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사회적 관계 맺기의 첫 단계인 연애에서부터 성인지적 관점과 여성주의적 의사소통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화여대 양성평등센터는 지난 4월 28일 ‘행복하게 연애하기’를, 5월 6일엔 ‘데이트 관계에서의 사랑과 평등’을 주제로 양성평등 특강을 실시했다.

강사였던 배정원 행복한 성 연구소 소장은 여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혼전 순결’을 통해 성적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 소장은 “많은 여학생들이 혼전 순결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상담을 해보면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남자는 순결한 여성을 좋아한다’는 사회적 통념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순결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에게 순결이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지 기준을 정해 연애 상대가 그 이상을 요구할 경우 어디까지 양보하고 어떻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것인지 등 협상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 6일 특강을 맡았던 김영희 서강대 양성평등성상담실 상담교수는 유독 데이트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공적 관계에서는 당당하고 자기 주장을 펼치던 여학생들이 남녀관계에서는 ‘자기 주장보다는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여성적이며 남성들도 이런 여성을 좋아한다’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혀 남성에게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으로 여성의 지위와 성평등 의식이 아무리 높아져도 연애 관계에서 이러한 ‘절름발이 관계’가 지속되는 한 여성들은 술자리 성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연애 관계에서도 남성 중심의 사회적 통념과 성역할 고정관념을 꿰뚫어볼 수 있는 성인지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여성민우회는 4월 2일, 7일 성공회대와 강원대에서 ‘오해 풀기와 약속 잡기뿐인 연애, 너는 어때?’라는 제목으로 ‘찾아가는 여성학 강좌’를 열었다.

강사로 나선 권수현 여성민우회 정책위원(여성학자)은 ‘연애’에 대한 개념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정책위원은 “연애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보이지만, 고등학생 미성년자에서 대학생 성인의 범주에 들어가 인간관계를 학습하는 첫 과정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경계 넘기’의 하나로 해석해야 한다”고 정의했다.

연애를 시작함과 동시에 연애 상대에게 어디까지 성적 관계를 허락해야 할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낼 때 ‘쉬운 여자’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그래서 어느 정도 수동적이고 모르는 척 행동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규범전쟁’을 벌인다는 것이다.

권 정책위원은 “연애 문제도 사회적으로 접근하고 해결해야 한다”며 “연애 과정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남성 이데올로기가 자신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읽어내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새로운 각본을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혼자서 풀기 어렵다면 여성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담론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도 일상의 연애 이야기로 풀어가는 여성학 강좌에 대해 호평을 내놨다.

이수정(가명·21·성공회대)씨는 “그동안 여성학은 이론 중심의 딱딱한 학문인 줄 알았는데 강연을 듣고 나니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앞으로 이런 강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심하현(가명·23·이화여대)씨도 “이번 강의를 통해 나 자신이 성에 대해 보수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버지나 사회적 통념에 의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갖게 됐다”며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남자친구와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가고 싶은지에 대해 더 주체적인 의식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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