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성매매 등 성 착취 실태 조사키로
국가기관 조사로는 최초…공동신고센터 운영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가 여성 연예인의 인권 상황에 대해 실태조사에 착수한다. 

최근 고 장자연씨 자살사건 등 여성 연예인에 대한 성적 착취 관행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데 따른 조치다. 여성 연예인의 인권 문제는 연구 자체도 없을 뿐더러, 국가기관이 조사에 나선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위는 지난 4월 28일 ‘2009년 인권상황 실태조사 과제’를 발표하고 “장씨의 죽음으로 여성 연예인이 고위층의 접대에 동원되거나 강요받는 현실, 연예기획사와의 불평등한 계약 관행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과제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인권위는 오는 6월 초 외부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여성 연예인에 대한 성폭력, 성매매 등 성적 인권침해 실태 설문조사 및 피해자 인터뷰 ▲여성 연예인 인권보호와 관련한 외국 사례 연구 ▲여성 연예인의 계약 및 고용구조 현황과 근로조건 실태조사 ▲여성 연예인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정책적 대안 연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주요 조사 대상은 여성 연예인이지만, 연구의 형평성을 위해 남성 연예인에 대해서도 조사를 병행할 예정이다.

이수연 인권정책과 사무관은 “성폭력이나 성매매 등의 피해를 본 여성 연예인들은 자신의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드러내거나 말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조사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한예조와 공동으로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등 연예인 당사자 단체와 적극 협력해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하 한예조)은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15일까지 탤런트지부 조합원 2200명(신인 탤런트 등 일부를 제외하고 전체 탤런트의 약 95%에 해당하는 인원)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 중 300여 명이 조사에 응했고, 5월 초 기자회견을 열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문제갑 한예조 정책의장은 “그동안 연예계 내에서 떠돌던 신인 여성 연예인의 성 상납에 관한 설은 수백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구체적인 명단이 공개되기는 장씨 사건이 처음”이라며 “힘없는 신인 여배우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지만 조사 신뢰도에 이의가 제기될 수 있어 인권위에 실태조사를 공식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문 정책의장은 “여성 연예인에게는 성적 문제가 앞으로 연예활동을 하는 데 치명적이기 때문에 인권위가 아닌 청와대가 나서더라도 조사가 불가능하다”며 “권위 있는 선배 연예인들이 직접 나서 일대일로 조사를 진행하는 방법 등을 포함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여성 연예인에 대한 성적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예매니지먼트 회사나 방송 제작사 등에서 자구노력을 해왔지만 다른 직종에 비해 빈도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한예조가 첫 발을 떼고 점차 방송연예계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 활동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12월 초 연구용역 결과가 나오면 방송사와 제작사, 연예매니지먼트사, 문화체육관광부, 여성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기관과 부처에 정책 대안과 가이드라인 등을 권고할 방침이다.

한편 인권위는 여성 연예인 이외에도 ▲중도탈락 학생 운동선수 ▲노인 ▲비주택 거주민(고시원, 컨테이너, 숙박업소 등) ▲개인정보 수집·유통 등에 대해서도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또 연구과제로 ▲성·나이 차별에 따른 임금차별 판단기준 연구 ▲기업의 인권경영에 관한 모범사례 연구 및 ‘자가진단도구’ 개발 ▲대학 장애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한 개선방안 연구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인권위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지난 8년간 142건의 조사를 진행해 정부에 정책 대안을 권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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