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패션’이란 말의 유래가 패스트 푸드라면 패스트 푸드의 문화적 대안으로 발전한 슬로 푸드에서 패스트 패션의 미래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겠으나 속도의 미학을 추구하는 패스트 패션이 야기하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문제들을 성찰한다면 패스트 푸드와 패스트 패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일본 시마무라 나쓰진은 “슬로 푸드란 음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묻는 작업”이라며 슬로 푸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 말을 패션에 적용한다면 “슬로 패션은 내 몸을 감싸는 옷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묻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슬로 패션은 속도와 관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패스트 패션이 국경을 넘어 구축하고 있는 생산, 유통, 소비의 통합적인 시스템은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 사용을 통해 부양되고 있다. 이 통합된 질서에 연계돼 있는 수많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처한 조건, 환경, 그들의 미래는 브랜드 이미지, 마케팅 전략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슬로 패션은 속도를 늦추어 전속력 질주 과정에서 놓쳐온 가치를 성찰하고 단절된 관계의 회복을 추구한다. 

그러면 슬로 패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상 속에서 구현될 수 있을까? 슬로 패션은 생태환경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다양한 의류들을 포괄한다. 예를 들어 환경 영향에 대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면섬유의 경우 유기농 면화로 대체할 경우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면화 이외에도 농약 사용 없이 재배 가능한 마섬유도 주목받고 있다. 야생동물을 사육해서 얻어지는 각종 모피류는 동물권의 측면에서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슬로 패션의 재료일 수 없다.

원산지 국가의 생산자와 그들의 공동체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다하는 옷은 공정무역 시장의 확대를 통해 보다 우리 일상과 가까워지고 있다. 공정무역의 의류들을 통해 소비자들은 3세계 생산자와 그들의 공동체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의류와 수공예품 생산자들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여성 생산자들은 자신의 공동체에 전승되어 오는 수공예 기술을 이용하여 당당한 장인이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이들이 정성스럽게 수작업으로 옷을 만드는 과정은 더디고 힘들지만 자신들이 뿌리내린 환경과 조화롭고 그들의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노동이다.  

슬로 패션의 최대 미덕은 지갑을 열지 않는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과 이웃이 서로의 옷을 물려 입는 일, 싫증난 옷을 리폼하거나 수선해서 입는 일 모두 속도와 관계를 성찰하는 패션의 일부분일 것이다. 재사용, 핸드메이드, 리폼 등과 같이 우리들의 손과 지혜를 이용하여 우리들의 일상에서 구해지는 자원을 활용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면 가장 제대로 된 슬로 패션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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