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사건에 발목 잡혀 남북관계 오리무중
경협도 약화돼…‘접근을 통한 변화’ 이뤄야

지난 한 달 동안 두 차례나 열렸던 남북 군사실무접촉이 별 성과 없이 종료되고 말았다. 회담 자체의 성과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금물이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 당국 간 첫 대화였다는 점에서 두 차례의 군사실무접촉이 남긴 의미와 교훈은 결코 작지 않다.

무엇보다 통상적인 통일전선부 소속 대남라인이 아닌 실세 군부가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두 번씩이나 연거푸 당국 간 회담을 자청하고 나왔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북한의 대남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노동신문의 강도 높은 비난과 거듭된 대북전단 살포 중지 요구도 어쩌면 남북관계 단절에 대비한 명분 쌓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나친 기우일까?

나아가 북한 당국도 우리처럼 지난 남북관계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대남정책의 틀을 새롭게 짜고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전략적 요충지인 금강산과 개성을 내주고, 사회문화 교류와 인도적 지원을 이유로 안방인 평양까지 남쪽에 개방했지만, 얻은 것은 근근이 연명할 정도의 달러라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 당국이 6·15 공동선언과 10·4 합의가 이명박 정부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이러한 진단도 결코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번 군사실무접촉에서 새삼 확인한 교훈은 우리가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대화에 응할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도 현 시점에서 반드시 잘못된 전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측이 원하는 시점에 북측이 선택한 의제를 가지고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남북대화와 협상을 이끌어 갈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 정부는 국민여론을 이유로 국제사회의 거듭된 대북지원 요청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오죽하면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한 것이 사실로 판단된다며 인도적인 식량지원을 정치적 사안과 분리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무부서에 권고하였을까. 인도적 사안에 있어서까지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응한다는 입장이라면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100일이 넘게 지났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에는 그야말로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대상에서 제외했으며, 국제 금융시장의 위기로 국가경제가 심상치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와병 중이며, 남북경협도 지난 8월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국익의 관점에서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작금의 남북관계는 금강산 사건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 피격사건과 여타 남북관계는 분리 대처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서독의 유명한 동방정책가인 에곤 바(Egon Bar)가 일관되게 주장한 ‘접근을 통한 변화’가 새삼 절실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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