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의 힘, 다양한 변화상 담아내야”
“여풍 속 부족한 임파워먼트 간극 좁혀야”

“1988년 창간 때부터 여성신문 애독자였어요. 여성신문은 여성언론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여성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해 준 유일한 언론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통해 여성들의 성장과 도약을 주도하는 여성신문의 새로운 20년을 기대합니다.”

지난 2004년 8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대법관에 임명된 김영란(52) 대법관은 여성신문과 인연이 깊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김 대법관에게 88년 창간한 여성신문은 우리 사회 곳곳의 다양한 여성 이슈를 접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비롯해 부부 평등 재산권, 여성의 사회 진출 등 여성신문 기사들은 그의 관심 영역과 맞닿아 있었다.

이후 줄곧 평범한(?) 독자로 관계를 맺어오던 김 대법관은 2004년 첫 여성 대법관에 임명되면서 여성신문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여성신문은 2004년 8월 31일 여성 첫 헌법학자 윤후정 이화여대 명예총장과 첫 여성 대사인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등 여성계 인사 60여 명과 함께 ‘김영란 대법관 취임을 축하하는 여성모임’을 개최했다.

뒤이어 같은 해 12월에는 여성신문이 주최한 ‘제1회 여유만만 콘서트’에서 역도선수 장미란, 패션 디자이너 김은희와 함께 ‘1만 여성 리더의 역할모델’에 선정됐고, 2006년 5월에는 남편 강지원 변호사와 함께 여성신문이 선정한 ‘평등부부’에 꼽혔다.

“그동안 여러 여성매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졌잖아요. 시대 변화에 따라 언론 환경도 바뀌었고, 여성에 대한 시각도 변화했죠. 지난 20년 세월 동안 꿋꿋이 자리를 지켜온 여성신문은 그 존재만으로도 많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법관은 사법부 내 여풍과 여성 관련 판결의 전향적 변화를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그가 대법관에 임명된 2004년을 기점으로 여성 법관들이 대거 늘어 최근 몇 년간 새로 임명된 판사의 70% 이상은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대법원이 여성에게도 종중원의 자격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한 배경에는 그의 역할이 컸다.

김 대법관은 “당시 여성의 회원 자격을 인정하면 여성의 자녀도 회원에 포함돼 조직이 비대해지고 종중원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반발이 컸지만 여성 법관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전향적인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며 “재산 분배 기준 등 남은 과제가 많지만 여성들의 권리 보장이라는 선언적 효과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여성신문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 대법관은 “행정부 고위 관료나 대기업 임원 등 일부 영역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지만 그에 걸맞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능력에 맞는 권한 부여)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여성신문의 새로운 20년은 변화·발전하는 사회의식과 정체되어 있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들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거나 공감하는 남성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며 “친여성적인 남성들이나 젊은 세대들이 여성신문 안에서 성평등 이슈를 나누고 공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통방식을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 대법관은 요즘 2년 앞으로 다가온 2010년 세계여성법관회의 개최를 앞두고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몸보다 마음이 더 바쁘다”고 말했지만, 서울선언 등 특색 있고 의미 있는 대회를 위한 아이디어 수집과 연습 회의 등 누구보다 발로 뛰며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는 “이번 대회가 한국의 안정적이고 잘 정비된 재판제도를 세계에 알려 한국의 금융시장 신뢰도를 높이고, 여풍을 주도하는 여성 판사들이 세계 속에서 자기 발전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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