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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버지가 다른 형제들도 다 있는데, 저보고만 숲속 오솔길

을 정리하러가자고 했죠. 나중에 이유를 물으니, 제가 곧 다른 도시

로 떠나게 돼있어 오솔길을 거닐 때마다 저와 함께 한 추억을 떠올

리고 싶으셨다더군요. 이처럼 남자들도 섬세하고 따뜻한 감정 있습

니다. 다만 이런 느낌을 표현할 수 없게 하는 가부장문화에 익숙해

져 있을 뿐입니다.”

벽안의 이국인 신부가 메리놀선교회 소속으로 한국에 정착, 영적

치료와 피정 지도, 다양한 계층의 공동체 운영, 시민운동, 특히 평등

문화 가꾸기에 열정을 쏟고 있다. 미국명으론 러슬 팰트마이어, 한국

명으론 하유설 신부(53)로 불리는 이가 바로 주인공. 지난 95년부터

는 서울여성의전화에서 운영중인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모임’

주축멤버로 활동중이다. 69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첫 발을 디

딘 하 신부는 6년후 신학교에 입학, 75년부터 메리놀선교회 소속으

로 한국을 자주 내왕해왔다.

그가 평등문화, 특히 남성의 가부장적 억압 벗어나기에 관심을 쏟

게된 계기는 80년대 말 접하게된 여성신학의 매력때문. 여성문제 대

부분은 결국 남성문제로 귀착돼 과연 남자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

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모

임이 군사문화와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도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하 신부는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반가왔다. 그동안 회원들과 사회, 가정에서 남자로서의 체험, 그리고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체험들을

나누었다.

일련의 작업들이 결실을 맺어 97년 초엔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무어·더글러스 질레트 공저의 '남자 바로 보기'를 번역, 출간하기

도 했다. 하 신부에 따르면 “가부장적 성향이 강할수록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것. 현재는 폴 키벨의 '남성의 작업-우리 삶을 파괴

하는 폭력을 어떻게 멈출 것인가'를번역중이다.

“평등문화를 어떻게 일구어나가고 지지해나갈지에 관한 구체적 모

델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 모임 자체도 ‘여태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평등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논의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희

망입니다.”

하 신부는 27일 있을 평등문화를 가꾸는 남성모임을 앞두고, 모임

을 좀 더 활성화시킬 방안 모색과 함께 10월 주제를 찾느라 바쁜 나

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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