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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아크릴,96x68".1997

*<초승달>,아크릴,96x68".1997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소재로 우주적 세계관을 보여온 재미작가 김

원숙(45) 화가의 전시회가 지난달 23일 막을 올린 조선일보 미술관

전시에 이어 18일까지 아트스페이스 서울과 학고재에서 열리고 있

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특히 그의 흑백 작품 1백60여 점이 선보인다.

김원숙 씨는 홍익대 1학년 때인 1972년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일리노이주립대와 대학원에서 수업했다. 그간

총 30여 회에 이르는 국내외 개인전과 뉴욕현대미술관 등의 그룹전,

95년 한국인 최초로 ‘유엔 후원 미술인’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으

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남편인 스티브 린튼은 4대째 호남지역

에서 선교, 봉사활동을 해 온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역시 미국 유학

중 김원숙 씨와 결혼했다.

유진벨 재단에서 북한돕는 일을 하는 남편과 함께 김원숙 씨는 그

간 여섯차례 북한을 방문했는데, 이번 전시에는 옥수수 포기를 심어

놓고 자라기를 기다리는 ‘기다림’, ‘굶주림’과 같은 북한의 참

혹한 식량난을 체험하고 그린 그림이 여럿 전시중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보아 전시회의 제목이기도 한 ‘비우는 행

복’이다. 그의 작품이 스스로 보여주듯 비울 때 더 커질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에게도 행복을 약속받지 않았습니다. 그런

데도 행복하지 않으면 억울해하지요. 그 사이사이 받은 선물과도 같

은 행복에는 눈 돌리지 않고 말이예요. 지금 한국은 어느 때보다 어

려운 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빈곤의 북한을 생각하면 그

고통은 ‘상대적 빈곤’으로 인한 것이지요. 저의 작품이 사람들에

게 위무가 되고, 현재의 어려움 쯤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극

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여성의 이미지를 띤 사람이 자주 그려진다.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그것의 솔직한 표현이 빈번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지만 여성으로서의 무엇, 한국사람으로서의 무

엇과 같은 조건을 별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조건을 가

지고 살아갈 뿐이지요. 하지만 ‘여성주의 작가’라고 불리는 것은

원치 않아요. 여성성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그리고 그의 작품에는 늘 바람과 새 등이 등장한다. 바람이 늘 변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전한다면, 새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참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의 상징이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이미

지, 이리저리 일렁이는 바람속에 새를 어깨에 얹고 먼 곳을 응시하

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가슴의 응어리가 씻겨나가는 듯한 후련함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은 이해하기 쉽고 진한 감동을 전한다.

“저는 저의 작품을 민중미술이라 불러줄 때 매우 기뻤어요. 그림도

하나의 언어일진대 제 말이 ‘민중’들에게 이해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모든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해야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림속의 색깔을 보고 ‘아 이 색깔이 이런 느낌을 주는구

나’‘이 색깔과 이 색깔을 조화시켰을 때 이런 느낌을 줄 수도 있

구나’하는 일깨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

서 예술은 항상 아방가르드적인 요소를 내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없던 무언가로 모르던 것을 깨워주어야죠.”

그의 시선은 늘 소외되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머무른다. 그

것은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천성 때문인데, 바로 ‘자상함’

이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요소를 인간화하여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우주적으로 승화한 것이 바로 자상함이라 믿는 김원숙씨의 작품세계

는 모든 대상에 부정적인 이해보다는 고통일지라도 어차피 올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를 통해 동양적인 선의 경지에도 맞닿아 있다.

아트스페이스서울(02)737-8305, 학고재(02)739-4937

〈최이 부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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