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이프’ 창간 때부터 대모 역할
“페미니즘과 대중의 간극 줄이는데 노력”

 

1997년 여름 ‘지식인 남성의 성희롱’을 고발하는 기획기사를 중심으로 성역 없는 페미니즘 담론을 담아내며 등장했던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IF)’. 10년간 다양한 여성이슈를 발굴해내며 세상을 뒤집었던 여성주의 계간지 ‘이프’가 2006년 저널에서 여성문화운동단체로 변모하는 과정의 중심에는 유숙렬, 그가 늘  있었다.

편집위원, 이사 등으로 이프와 동행해 온 그가 지난달 이프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이로써 문화미래 이프는 엄을순, 유숙렬 공동대표 진두지휘 아래 재도약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지금은 잡지를 발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이프의 방향을 모색할 때입니다. 의제 발굴이 어렵고 이슈 파이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프뿐만 아니라 여성계 전체의 과제입니다. 우선 시대 키워드가 ‘다문화주의’인 만큼 페미니즘과 만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고민할 계획입니다. 온라인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 홈페이지 수정작업도 들어갔고요. 늘 이프와 함께해 왔지만 이제 전면에 나서게 된 만큼 어깨도 무겁습니다.”

계간지 ‘이프’는 유 대표의 꿈이 실현된 성과물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에서 10년간 여성학을 공부하며 ‘여성매체를 만들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이프’에 담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저널 이프를 대체할 매체 탄생도 모색할 계획이다.

이프는 잡지 완간 후 ‘인사이드(Inside) F’라는 뉴스레터를 격월로 발행해 왔다.

소설가 이문열의 ‘선택’ 논쟁과 여성 징병과 관련한 논란을 앞서 제기하며 가부장제 사회를 향해 직격탄을 날려 ‘페미니스트 논객’이라 불리던 그는 지난 2005년 여성주의 시인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외로워서’란 시집을 통해 그는 태어나기 전 아버지를 여읜 개인적 아픔에서부터 여성운동가로서 끝없이 싸우면서 느꼈던 소회를 털어놓았었다. 시를 쓰는 일을 통해 남녀 모두를 위로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분노만이 아니라 사랑을, 투쟁만이 아니라 위로를 안고 싶다고 했던 그에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민거리가 있다. 페미니즘이 시대와 동떨어진 가치가 되어가는 것.

유 대표가 페미니즘이 희화화되는 것을 다시 우려하게 된 데는 SBS 새 드라마 ‘워킹맘’과 관련이 있다.

드라마에 온라인 페미니스트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는 이혼녀 ‘박인혜’가 등장하는데 어느 날 드라마 관계자들이 ‘이프’를 모델로 삼았다며 촬영을 요청해온 것이다. 일하는 여성들의 애환을 담은 드라마라고 하기에 이프 측은 흔쾌히 허락했지만 알고 보니 ‘인혜’는 표리부동의 대명사로 그려지고 있었다.

“‘인혜’란 인물이 밖에서는 인권운동 하면서 안에서는 애들까지 버려가며 연애에만 관심 있는 여성으로 그려지는 걸 보면서 ‘여전히 반(反)페미니즘적인 사회적 성향이 강하구나’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한쪽에서는 이제 여성운동은 필요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페미니즘 논의가 필요하니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활동도 시작해야겠죠.”

싸움이 어려워진 시대. 그만큼 여성문화운동 단체를 이끄는 일도 어려워졌지만 그는 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프 내면에 존재하는 힘을 믿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의 행보를 힘차게 이어나가기 위해 그는 잠시 숨고르기 중이다.

“페미니즘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아는 것’입니다. 실제 페미니즘은 진짜 저 자신을 찾게 해주었고요. 나의 구원이었던 페미니즘이 한국사회의 구원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이프 행보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방송위원회 2기 방송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는 유숙렬 대표는 1978년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해 미주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며 뉴욕 헌터컬리지 여성학 학부과정과 뉴욕시립대 대학원 여성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한국으로 돌아와 2004년까지 문화일보 기자로 근무했으며, 단행본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번역했고 ‘한국에 페미니스트는 있는가’ 총론 집필, ‘엄마 없어서 슬펐니’를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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