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왕자웨이 스타일’에서 느끼는 아쉬움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에서 관객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사랑과 이별에 휘둘리는 젊은이의 미세한 감정 포착. 이를 위해 검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마크인 홍콩 감독은 잘 생긴 유명 배우, 재즈풍의 나른한 속도와 리듬, 멋을 부린 화면 구도와 색감 대비, 도시의 밤과 실내라는 폐쇄 공간, 감성을 촉촉이 적시는 음악을 즐겨 동원한다.

순간에만 충실할 뿐, 현실에 발을 디디길 원치 않는 감정의 파편만을 화면에 담아온 감독이니만치, 그 영화가 그 영화 같다는 평을 듣는 건 당연하다. 뮤직비디오 세대 감성을 스크린에 확대 투영해온 모던 보이의 영화를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취향 차이만 있을 뿐. 한 세대를 열광케 한 것으로 소임을 다한 왕자웨이 영화에 대해 아직도 장문을 쓰는 이들이 있다는 건, 그래서 놀랍다.

왕자웨이 감독의 14번째 연출작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My Blueberry Nights)에 대한 객관적 홍보거리는 많다. 왕자웨이 감독의 첫 영어 영화이며, ‘재즈계의 신데렐라’ 노라 존스의 배우 데뷔작이며, 2007년 칸영화제 개막작이라는 것 등. 그러나 홍콩이라는 좁은 공간을 벗어나 뉴욕, 멤피스, 라스베이거스의 풍경을 담았다고 해도 분위기, 스타일 어느 하나 달라진 게 없다. 좁고 허름한 카페 유리창과 네온사인을 경계로 밖과 안에서 들여다보는 시선, 도시의 밤을 달리는 기차 소리, 건조한 내레이션 등의 사소한 부분까지, 너무나 왕자웨이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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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요약하면 여행을 통한 여주인공의 성장영화구나 싶을지 모르나, 성장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강함은 당연히 없다. 왕자웨이 감독은 “이별의 아픔 치료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여인을 그린 영화”라고 했는데, 이별의 아픔을 치료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 여인도 있는가? 어떻게 치유하는가가 중요하며, 또 그걸 영화로 보고싶은 것이지.

왕자웨이 영화로 청춘의 한때를 적셨던 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쓰기 어려운 색깔인 블루베리, 즉 보라색 색감과 감정을 택한 게 좋았고, 영화를 보고나면 아이스크림을 얹고 우유까지 끼얹은 블루베리 파이를 먹고 싶어지며, 앳된 표정의 노라 존스 연기도 나쁘지 않지만 일급 스타들의 자조와 퇴폐 분위기만은 왕자웨이 연출 너머의 아우라라고 하겠다.

남자친구에게 차인 엘리자베스(노라 존스)는 남자 친구 집 열쇠를 카페 주인 제레미(주드 로)에게 맡긴다. 헤어진 연인들의 찾아가지 않는 열쇠들을 보관하고 있는 제레미는 매일 밤 블루베리 파이를 먹고 가는 엘리자베스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멤피스의 한 바에서 일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아름다운 아내(레이첼 바이즈)에게 집착해 파경에 이른 경찰 어니(데이비드 스트래선)의 상심과 죽음을 목격하고, 아버지에 대한 애증으로 인해 마음을 닫고 사는 전문 갬블러 레슬리(나탈리 포트먼)와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느낀 감정들을 엽서에 써 보내는 엘리자베스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보는 제레미. 겨울 밤,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냈던 제레미 앞에 다시 엘리자베스가 찾아온다.  

감독 왕자웨이/ 출연 노라 존스, 주드 로/ 제작연도 2007년/ 시간 94분/ 등급 15세/ 출시사 케이디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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