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캠프 주인공은 촛불소녀들!
촛불집회의 주역은 소녀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빠부대’나 ‘알파걸’ 등 그저 신조어로만 불렸던 소녀들이 거리에 서서 구호를 외치고, 마이크를 들고 또박또박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잊혀가고만 있던 민주주의를 다시 시대적 화두로 이끌어낸 소녀들은 6월 6일부터 3일간 전남 해남과 강진 등지에서 열린 ‘17번째 고정희 시인기행’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정립하고 운동가의 강인함과 시인의 섬세함을 고루 갖춘 시인으로 평가되는 고정희 시인. 이 기행은 그가 지리산 자락에서 등반 사고로 세상을 떠난 1991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안문화운동단체 ‘또 하나의 문화(또문)’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회학, 인류학, 여성학 등을 전공한 교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또문 동인 중 올해는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 박혜란 여성학자,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 조옥라 서강대 교수, 이경자 소설가 등이 함께했다. 그의 기일에 맞춰 연례행사로 진행되는 고정희 추모기행은 그의 무덤과 생가를 찾는 추모 행사의 성격을 띠는 동시에 매년 1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여성주의 기행 성격을 띠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고정희 시인 기행이 10대들이 ‘실질적인 문화인력’으로 키워지는 토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성과 중 하나가 바로 ‘고글리’라는 모임. 올해 처음으로 ‘고글리’란 이름으로 기행에 참가하게 된 이 단체는 ‘고정희문학상에서 만나 글도 쓰고 문화작업도 하는 마을(里)’의 준말이다.
이 모임에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로바씨는 “‘고정희’라는 이름 아래 모여 여성주의적 감수성으로 다양한 문화작업을 하는 모임으로 성장하리라 기대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고정희 문학캠프를 주최하는 주체 세력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즈음에 태어난 소녀들이 주체적으로 기행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몽골 학교의 청소녀들이 참여해 고정희 기행이 아시아로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앞서 2001년에는 ‘소녀들의 페미니즘’이란 주제로 모인 소녀들이 고정희의 시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파티나 워크숍의 디자인물을 만들기도 했다.
기행 주인공이 ‘소녀’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고정희문학상 본선대회를 기행일정에 포함시킨 이유도 있다. 과거에는 백일장 예선 통과자중 신청자만 기행을 함께 떠났지만, 올해는 본선대회를 시인의 고향인 해남에서 치르면서 고정희 시인과 보다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시인의 무덤 옆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목련나무에 걸려 있던 한 소녀의 편지는 기행에 참여한 수많은 소녀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시인은 세상을 낭만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정희 시인의 사회비판적인 시를 읽으며 여성을 살리기 위해 시로써 적극적으로 나서주셨던 시인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시인은 언제까지나 불타는 정신을 소유한, 유일한 시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
[=전남 해남·강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