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성경은 선진적 코란은 후진적’믿음 잘못 남편에게 이혼요구 등 코란에도 여성 위한 조항

나는 한 남자의 유일한 아내이기가 기꺼운가?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한 남자와 배타적인 애정을 나누는 것은 간혹 좋으나 주부 노릇은 즐기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먹을 것, 입을 것을 갖추어 놓는 수고와 어른 되도록 본 적 없는 ‘시댁 식구’와 가족처럼 지내는 어색함을 당연하게 넘기고, 나 낳아 키워준 부모님 혼자 지내시는 명절에 찾지 못하며, ‘시부모님’ 아프시면 친자식을 다 제치고 병구완 도맡는 묘한 상황까지 때로 감내하는 것을 공정하고 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일부(一夫)의 다처(多妻) 중 일처(一妻)인 것은 어떨까? 한사코 무조건 싫을까? 거친 야생에서 별다른 도구 없이 살아야 하는데 남자가 너무 적다면? 늘 혼자 있기는 싫으나 늘 남자와 같은 집에 사는 게 불편하다면? 한 남자를 늘, 당연히 거두기 싫다면?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인간사 알 수 없으니 나는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일부다처제 하면 떠오르는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고 싶은가? NO. 내가 아는 한 지금 지구에 있는 어떤 이슬람 국가에서도 여성으로 살고 싶지 않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혹 기독교 국가, 불교 국가, 힌두 국가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대답은 나의 과문 탓이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 인도네시아의 여성 저널리스트 율리아 수리야쿠수마(Julia Suryakusuma)가 알려주는 코란은 내 짐작만큼 반여성적이지 않았고 어느 대목에서는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코란의 첫 구절은 “Iqura 읽어라”, 즉 지식을 찾고 공부하라는 말인데 여기에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없다. 이슬람에서 아주 이상적 결혼으로 여기는-사랑, 존경, 노력, 상호지지, 충고와 조언이 충만한-이슬람교 창시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첫 결혼 상대는 15세 많은 과부였다. 결혼할 때 40세였던 아내 카디자(Khadijaj)는 부유하고 학식 높은 성공한 사업가였고 25세였던 예언자 무함마드는 카디자의 고용인이었다. 결혼 후 카디자는 남편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조언자였고 예언자 무함마드가 첫 계시를 받았을 때 그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지원했다(이거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의 계시를 받아 홀로 기약 없이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겠다는 남편을 상상해보라). 즉 코란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 혹은 우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코란은 결혼한 남녀 모두에게 섹스가 권리이자 의무라고 말한다. 결혼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to have sex 섹스하라’는 말이고, 아내는 섹스하지 않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코란은 중혼하는 남성에게 몹시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남자는 첫 부인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고, 종교법정에서 승인 받아야 하며, 물질적·성적·정서적으로 모든 아내들에게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 이럴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나는 신은 믿으나 종교는 믿지 않는다.”

율리아의 말이다.

“나는 신과 사람은 믿으나 돈과 권력은 믿지 않는다.”

나는 율리아의 말을 이렇게 읽는다.

여성에게 성경은 코란보다 선진(先進)인가? 여성에게 부처는 무함마드보다 선진인가? 이젠 안다, 서양이 모든 선진의 대표선수가 아니며 많은 야만의 대표선수라는 것을. 여성을 포함한 약한 자들에게 진정으로 우호적인 권력을 찾기 힘들다는 것도. 종교건, 국가건, 자본이건, 이념이건 심지어 혁명까지도.

지금까지 내가 모르는 것과 비교하면 지금 모르고 있는 것이 무한대로 많을 것이다. 나의 희망이 여기에 있다. 그러니 나는 되도록 판단하지 않겠다.

그런데 남녀관계에서는 무엇이 선진일까? 중국 공산당식 폐문회의(閉門會議)를 하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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