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년간 여황제 호령…현 시장도 여성
세계문화유산 도시답게 문화자부심 가득
모스크바 레닌 역(러시아 기차역들의 이름은 출발지가 아닌 종착지를 따라 붙여진다)에서 5시간여의 기차 여행 끝에 도착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밤10시가 가까운 시각인데도 저녁 어스름조차 옅었다. 5월 중순에 시작돼 7월 중순에 끝나는 백야가 시작되기 직전인 덕분인데, 밤이 반 시간밖에 안 되고 저녁노을이 곧장 여명으로 바뀌어 새벽 2시쯤에 잠깐 어두컴컴해질 뿐이다.
페테르부르크는 ‘북방의 베니스’란 별칭답게 시 중심을 관통하며 핀란드만으로 흘러드는 길이 740km, 유역 면적 28만2000㎢의 네바강을 중심으로 지류와 운하를 포함해 60여 개의 강, 하구 100여 개의 섬, 대교와 군소 다리 500여 개로 이뤄진 운하의 도시다. 도시 명이 상징하듯 ‘성스러운 베드로 사제’의 도시이기에 러시아 특유의 가지각색의 화려한 성당이 800여 개에 이른다. ‘페테르부르크’는 또한 1703년 이 도시를 세운 표트르 대제의 이름과도 일맥상통한다. 페테르부르크의 주요 유적을 둘러보면 현 러시아 영토 대부분을 지배한 러시아 최초의 황제 표트르 대제, 이후 제국을 더욱 팽창시킨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직전 도시 명이었던 ‘레닌그라드’가 상징하듯 1917년 10월혁명의 중심인물 레닌, 이렇게 세 사람의 이름을 과장 좀 보태서 700회 이상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제정 러시아 300년 수도의 영화와 공산정권의 전성기, 이어서 개방화를 대변하는 복잡다단한 정체성을 지닌 도시다.
페테르부르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시이기에 건물 외관만 조금 수리할 수 있을 뿐 고도도 5층 높이 이하로 제한된다. 건물의 경우 1층은 모두 상점으로, 2층은 사무실과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입구 겸 둥근 아치를 통과하면 마주치는 ㅁ자 형 구조 속에 주차장, 놀이터 등을 배치해 혹독한 겨울 추위를 최대한 막는 가옥 구조다. 2m에 이르는 고드름을 방지하고자 지붕과 처마는 최대한 짧게 했으나 그래도 해동기가 되면 이 거대한 고드름에 맞는 사상자가 하루에 1명 정도는 발생한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 속에 핀란드만까지 이어지는 네바강이 얼어붙어 그 위에서 산책은 물론, 자동차 경주, 스키까지 할 수 있다.
이상한 도시 페테르부르크. 그 중심엔 이곳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난 페테르부르크 사람이야”란 말에 배어 있는 역사·문화와 민족자존감, 저항정신이 내포된 강한 자부심이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조금은 짐작케 해준다. 가장 대표적인 실례는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872일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도시 봉쇄를 견뎌냄으로써 결국 세계 제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가 패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 이삭 성당과 근처 표트르 대제의 ‘청동의 기사’ 동상 주변은 페테르부르크인들의 항쟁 정신의 절정을 보여준다. 알렉산드르 1세 때인 1818년 공사를 시작해 아들 알렉산드르 2세 때인 1858년까지 40여 년간 50만 명을 동원해 완공한, 규모 면에선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이삭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은 거대한 모래성을 쌓고, 고무비행선을 띄워 문화유산을 지켜냈다. 이삭성당은 둘러싼 112개의 돌기둥과 100㎏ 상당의 금을 사용해 만든 황금 돔으로 특징지어지는데, 길이 111m, 폭 98m, 높이 102m로 한 번에 1만4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시민들은 손가락만 한 빵과 최소한의 물로 연명하면서 화려한 주변 잔디밭에 비상식량으로 양배추를 한껏 키워냈다.
한편으로 페테르부르크는 예카테리나 2세로 대변되듯 70여 년간 여황제(여제)들이 호령했던 우먼 파워의 기가 센 도시이기도 하다. 우선, 로마노프 왕조를 연 표트르 대제의 황후였던 예카테리나 1세가 대제 사후 즉위해 러시아를 통치했다. 이후 궁정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표트르 대제의 딸 엘리자베트 여제(재위 1741~62)의 시대가 온다. 몽골식 잔재가 남아있는 러시아 왕실의 분위기를 일신해 문화적인 유럽 왕실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엘리자베트 여제는 불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독어가 유창한 재원인 데다가 용모도 출중했다고 한다.
그는 탁월한 건축가인 라스트렐리에게 로코코 양식의 겨울궁전을 짓게 해 현재의 국립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기반을 마련했다. 1762년 건축된 겨울궁전은 1056개의 방, 117개의 계단, 2000여 개의 창문과 함께 건물 지붕 위엔 170여 개의 조각상이 장식돼 있다. 그가 본격화한 미술품 수집은 후에 예카테리나 2세(재위 1762~96)에 가서 이미 4000여 점의 회화를 확보하기에 이른다.
현재 페테르부르크의 시장은 “도로 위 주차를 허용하겠다”는 공약으로 시장에 당선된 마트 비엔코란 여성이다. 개방화 이후 백야와 피의 사원, 여름궁전 등 휘황찬란한 역사·문화 유적으로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끌어들여 제2의 르네상스를 꾀하고 있는 페테르부르크를 여성이 통치하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기행에 참가했던 한명숙 전 총리 역시 러시아를 접한 경험을 들어 “사회주의를 경험한 러시아 여성들은 남녀평등 정신이 투철한 데다 강한 자존심과 도전정신으로 늘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 정치·문화에선 남성 중심적이지만 의료·법조·교육계 등에 여성들이 80% 이상 진출하고 있어 러시아의 또 하나의 미래를 구축하고 있다”며 러시아 여성들의 밝은 미래를 전망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사진 협조: 여성신문 러시아 경제·문화기행 참가자 김태호, 박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