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론 피해 미얀마 등 도움의 손길 절실
공적개발원조 금액 국민총생산 0.05% 불과
나라 밖 살필 때 내부 갈등 해결도 가능할 것

미얀마에 덮친 사이클론으로 수백만에 달하는 희생자가 생겨났다. 사망·실종자만 10만 명에 가깝다. 수십 년 계속되고 있는 군부독재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미얀마에서 지난해 시민들이 일으킨 모처럼의 항쟁은 결국 허물어지고 말았다. 미얀마 정부는 이 참혹한 상황에서도 독재가 흔들릴까 우려해 외부 구호단체의 입국을 막고 군부독재 강화를 위한 신헌법의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아시아 우리 이웃에서 이런 일들은 셀 수 없이 일어나고 있다. 티베트는 독립을 주장하며 중국정부의 가혹한 탄압을 견디고 있다. 인도와 네팔에는 지금도 수억의 ‘불가촉천민’이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시민단체들이 고문 반대와 강제실종 규명 운동을 처절하게 벌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스리랑카, 태국의 변경지역에서도 갖가지 인권침해가 끊이지 않는다.

시야를 더 넓혀보면, 아프리카 수단과 콩고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끔찍한 살육과 강간이 계속되고 있고, 아프리카 북부 지역에서는 어린 소녀들에게 건강과 삶 전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여성할례가 널리 시행되고 있다.

다시 미얀마 문제로 돌아와 보자. 워낙 엄청난 규모의 희생 때문인지, 우리 신문들은 연일 미얀마 상황에 대해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국제단체와 서구 나라들의 활동과 의견만 소개될 뿐 우리 정부와 시민단체들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유엔, 국제적십자사, 옥스팜이 구호물자를 전달했고, 미원조국과 호주 총리가 미얀마 국민을 염려한 발언을 했다고 보도한다.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전혀 없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 이웃들의, 세계의 고통에 대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사실 우리 시민단체들이 하나둘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지는 꽤 됐다. 아프리카 오지에 우물을 판다든가, 베트남 현지에 도서관을 세운다든가, 어린이를 위한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가 늘고 있다. 이번 미얀마의 사이클론 재해에도 월드비전과 같은 단체들이 이미 구호물자를 전달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독재와 그것을 강화시킬 한국 기업의 가스 개발 참여를 반대하는 운동은 수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도 참으로 그것은 글자 그대로 시작일 뿐이다. 국제인권을 위한 시민사회 세력은 이웃 일본과 비교해 보아도 미미하기 짝이 없다.

정부로 눈을 돌리면 더욱 부끄럽다.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금액은 2006년 국민총생산의 0.051%에 불과했다. 같은 해 일본은 국민총생산의 0.25%를 ODA 자금으로 지출했다.

한국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성공을 이룬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34위(2007년 IMF 조사)에 국가브랜드 가치순위는 32위(2007년 Anholt GMI National Brand Index report)에 머물고 있어서 갈 길이 멀긴 하다.

그렇다고 아직도 우리 안의 문제에만, 그것도 경제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우물 안 개구리식 관행이 우리의 경쟁력을 밑으로 잡아끌고 있다. 국가경쟁력 순위는 경제 사정과 함께 그 나라의 문화나 국민 성향까지를 고려해 결정된다. 그 요소들이 상호작용한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안의 문제와 함께 이웃의 고통을 함께 배려할 때가 되었다. 수백 년 전에 이미 선진산업국이 되어 남의 나라를 빼앗은 경험을 갖고 있는 最선진국보다, 식민지와 군부독재의 시기를 가까운 과거에 극복한 우리가 오히려 공감을 가지고 고통을 겪는 이웃을 배려할 수 있는 입지에 있는 것이 아닐까.

공천에 얽힌, 차마 보기도 싫은 비리들, 여야 간에는 둘째 치고 같은 당 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싸움들, 그 안으로 안으로만 머리를 기울여 아옹다옹하는 데서, 눈을 밖으로 같이 돌려 이웃을 돕는 데 손을 잡으면, 그 갈등들이 더 쉽게 풀리지 않을까. 남의 잘못을 들여다보면, 우리 안의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이 더 환하게 보이지 않을까.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기업의 투명성, 다문화 사회의 과제, 양성 평등, 장애인 문제 등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할 일이 태산이다. 그렇지만 이제쯤엔 바깥의 우리 이웃의 고통을 위해 일할 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야만 할 때다. 안과 밖의 일을 같이 해야만 안의 일도 잘 풀릴, 그런 시민사회의 위상을 확립할 때가 된 것이다. 풀뿌리 운동도, 시민의식의 함양도 모두, 우리 사회 안의 문제뿐 아니라 미얀마의, 티베트의, 콩고의 문제를 생각하면서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미얀마 재난에 대해, 한국 정부의 무게 있는 발언과 대책, 그리고 우리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구호활동이 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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