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알았어도 대책 없었다" 교육감 황당 발언
초등 1학년부터 성폭력 노출…후유증 대책 시급

 

지난 2일 문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한나라당), 유승희 통합민주당 의원, 이인식 여성부 차관(가운데부터 오른쪽으로)이 영남권역 해바라기아동센터를 방문해 사건 보고를 듣고 있다.
지난 2일 문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한나라당), 유승희 통합민주당 의원, 이인식 여성부 차관(가운데부터 오른쪽으로)이 영남권역 해바라기아동센터를 방문해 사건 보고를 듣고 있다.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겠습니다.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제가 알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미리 알았어도 대책 없었다”

 대구시 교육감 황당 발언

지난 2일 오전 11시 대구시교육청에서 열린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사건’ 간담회에서 신상철 교육감이 던진 말이다. 

이날 간담회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문희 한나라당 의원과 유승희 통합민주당 의원, 이인식 여성부 차관의 대구 현장조사 방문으로 이뤄진 자리였다. ‘학교폭력·성폭력 예방과 치유를 위한 대구시민사회 공동대책위’ 관계자와 방송·신문기자들도 동석해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모두들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뒤이어 사건이 발생한 A초등학교 교장이 입을 열었다. “가정에서 아이들이 음란물을 보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성폭력)사건도 먼저 인지했어야 했는데….” 교육감과 학교장의 사태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승희 의원은 “대구지역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지난해 11월 처음 교사의 (동성 성폭행) 보고가 있었을 때 동성끼리의 가벼운 장난 정도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가해학생들에 대한 심리치료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여학생 성폭행사건으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질책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초등 1학년부터 성폭력 노출

학부모 “전학시키려다 참았다” 

지난해 11월 처음 아이들의 이상징후를 발견한 교사는 A초등학교 3학년 담임이다. 동성 성폭행 가해·피해아동이 10살 안팎이라는 얘기다.

이 교사와 상담한 후 지난달 22일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여학생은 1학년 때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최소 2년 전부터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문희 의원은 이날 오후 3시쯤 A초등학교를 방문해 이 교사와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교사는 “아이들이 불안해하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고, 가해 진술 후에 형들이 때렸다고 말하는가 하면, 팔이 부러졌는데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한다”고 털어놨다.

고학년이 음란물을 본 후 같이 따라하자고 제안하고, 말을 안들으면 저학년 아이들을 때리면서 강요하고, 급기야 여학생을 데리고 와 집단으로 성폭행했다는 일련의 사건일지를 고려할 때 아이들의 이같은 불안증세는 또 다른 학교폭력과 범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이 교사는 “저 혼자서 많은 아이들을 일일이 상담하고 보호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학교에 상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부모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대구 A초등학교 정문 앞은 자녀들을 기다리는 부모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초등생 집단 성폭력사건이 밝혀진 후부터 매일 일어나는 풍경이라고 했다. ‘혹시 내 아이가 당하지 않았을까’ 목을 빼고 선 그들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역력했다.

실제로 지난달 초 성폭행을 당할 뻔했던 이 학교 1학년 여학생 부모는 “전학을 시키려다가 4일간 결석시켰다”고 말했다.

교육청·정치권 대책마련 고심

장기적 치료·역학조사 필수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교육청과 정치권 등에서 앞다퉈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오는 7월부터 전문 성상담사 40명을 인턴 형식으로 채용해 대구지역 211개 전체 초등학교에 상주시키기로 했다. 안전이 취약한 지역의 40개교에 집중 배치하고, 인근 학교에는 상담사 1인당 5~6개 초교를 맡아 예방 및 상담활동을 펼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정치권도 적극 나섰다. 한나라당은 지난 1일 ‘우리아이 지키기 본부’(본부장 전재희 의원)를 설치했다.

지난 2일 대구 현장조사를 실시한 본부는 현행법이 성폭력 가해학생 부모가 거부할 경우 가해학생의 심리치료를 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등 맹점이 있다고 판단, 성폭력 가해학생과 부모까지 교육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통합민주당도 ‘대구 어린이 성폭행사건 조사위원회’(위원장 김상희 당선자)를 설치하고, 지난 1일 대구에 다녀왔다. 조사위는 ‘신미디어법’ 제·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도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50여명의 현장 경력자들을 대상으로 ‘아동 성폭력 예방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신설해 교육을 실시했다.

대구시민사회 공동대책위는 지난 6일 ‘학교폭력 및 성폭력 상담지원팀’(전화 010-6780-3482, 이메일 help3482@hanmail.net)을 발족해 대구지역 성폭력 피해·가해자 상담서비스와 심리치료, 의료·법률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공대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이 폭력으로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지금 상태로는 정상적인 상담활동이 어렵다”며 “1년 이상의 장기적 상담과 후유증에 대한 역학조사 등 전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9일 대정부 질의를 통해 ▲음란물 차단을 위한 ‘사이버 파파라치제도’ 도입 ▲성폭력 사건 보고한 교사에 인사고과 반영 ▲시·도교육청 안전공제회에서 성폭력 피해학생 우선 보상지원 ▲대통령 직속 아동성폭력근절위원회 설치·운영 등을 제안했다. 여성가족위는 오는 14일 상임위 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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