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차 팽팽‘여성 자율권’vs‘태아 생명권’

연 34만여건에 달하는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같은 해 태어나는 신생아 수의 78%에 해당되는 규모다. 현행법상 ▲우생학·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성폭행 및 근친상간 ▲산모 건강 위험 등 사유를 제외하고 낙태는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실제 낙태죄가 적용돼 처벌되는 사례는 연 1~2회에 불과한 실정.

사실상 사문화된 인공임신중절수술 규제방안을 공론화하고 사회·경제적 사유 등 낙태 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장이 마련됐다. 지난 13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계, 여성계, 종교계가 참여한 가운데 모자보건법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 허용 한계’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개정안을 위해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정부가 나서 낙태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 관련 조항이 명시된 모자보건법은 1973년 제정 이후 86년 전부개정을 비롯해 여러 차례 개정이 이뤄졌으나, 각계의 첨예한 입장차와 사회적 환경 조성 미흡으로 유독 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에 관한 공론화는 부족한 실정이었다.

이날 자리에서도 “낙태의 현실적 허용을 인정하자”는 입장과 “낙태 자유화는 안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복지부의 용역 결과를 발표한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소 김소윤 교수는 “연 34만여건(미혼 14만, 기혼 20만)의 낙태수술이 이뤄지고 있고, 미혼 임산부의 97.1%가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택하는 만큼, 미혼 임신이나 사회·경제적 이유 등 ‘사회적 적응사유’로 산모가 요청하는 경우도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신 “낙태 허용 기간을 현행 임신 28주에서 24주로 축소하고, 윤리적 사유 및 사회적 적응사유는 12주 이내 등으로 사안에 따라 줄이자”고 주장했다.

사회적 적응사유로 인한 경우나 임신 8주내 낙태를 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상담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가톨릭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인 이동익 신부는 “사회적 적응사유를 포함한다는 것은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낙태 자유화나 다름없다”며 ‘태아의 생명권’을 이유로 강하게 반대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낙태 자유화 대신 왜 여성이 사회·경제적 사유로 출산 대신 인공임신중절을 택하는지 숙고해야 한다”며 출산과 양육 지원 등의 측면을 강조했다.

한편, 여성계 대표로 지정토론자로 나선 한국여성민우회 유경희 대표는 “이제 태아의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선택권의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서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유 대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만큼 사실상 낙태 허용범위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이나 워낙 민감한 사항이라서 여성계에서도 중론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라며 “여성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여성의 임신, 출산 등 재생산권에 대한 적극적 논의는 물론 여성인권을 포함한 성교육의 실시, 정상가족주의 중심의 사회인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이번 사안을 충분히 공론화한 뒤 결과물인 개정안을 올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각계의 팽팽한 의견차로 난항이 예상되는 가운데, 복지부가 음성적 낙태를 줄이는 실질적 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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