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성예산 아닌 99% 일반예산을 바꾼다

2010 회계연도부터 모든 정부 부처는 성인지 예산서와 결산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국가재정법 제26조는 “정부는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인 성인지 예산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성인지 예산서에는 ‘성인지 예산의 규모와 기대효과’를, 성인지 결산서에는 ‘성인지 예산의 집행실적’을 작성하도록 했다. 이는 곧 전체 예산 가운데 성인지 정책을 위해 사용할 예산을 따로 구분해 예산을 편성하라는 의미다.

전세계 70여개국에서 시행 중인 성인지 예산은 여성을 위한 별도 예산을 편성하거나 여성과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예산을 절반으로 똑같이 나누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 중립적으로 보이는 공공지출을 젠더 관점에서 분석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밝혀내고, 자원이 평등한 방식으로 배분될 수 있도록 예산을 재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문가들은 성인지 예산이 ‘이름값’을 하려면 기존의 ‘여성 예산’뿐 아니라 ‘전체 예산’이 분석대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인지 예산제도 연구책임을 맡은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예산센터장은 “성인지 예산제도의 가장 큰 목표는 1%의 여성 예산이 아니라 99%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 예산의 배분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연구진이 개발한 성인지 예산서와 편성지침의 가장 큰 성과는 일반 예산에도 젠더 관점의 분석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연구단이 개발한 성인지 예산서에 따르면 정부 부처의 한해 예산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양성평등 예산’이다. 여성발전기본법에 근거해 1998년부터 5년 단위로 추진되고 있는 ‘여성정책기본계획’에 수록된 정책예산이다. 

일례로 올해부터 시행되는 ‘제3차 여성정책기본계획(2008~2012년)’에 따르면, 노동부는 ▲노동시장 내 성차별 해소 ▲여성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 ▲모성보호제도 활성화 등의 사업을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여성 보건의료서비스 증진 ▲돌봄에 대한 사회서비스 확충 등을 위한 예산을 편성할 방침이다.

하지만 여성정책기본계획에 수록된 정책과제의 절반 이상은 공직 여성 참여 확대나 성매매 단속·처벌 강화처럼 예산이 거의 들지 않는 사업이다. 실제로 양성평등 예산은 전체 예산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두번째는 일반 예산 가운데 성별영향평가를 받은 ‘성별영향평가 대상사업’이다.

지난 2005년부터 일부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성별영향평가 사업은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정책·사업·법령이 결과적으로 남녀에게 균등한 수혜를 주고 있는지 평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관별로 전체 사업 가운데 여성 관련 정책 및 사업을 선정해 평가하고 있다. 성인지 예산제도에 발맞춰 2010년부터 모든 공공기관으로 전면 확대된다.

세번째는 성별영향평가 대상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 예산이다.

연구진이 개발한 성인지 예산편성 지침안에 따르면, 각 부처는 일반 예산 사업 중 3개 이상의 사업을 자율적으로 선택해 성평등 분석을 하도록 하고 있다. 분석 틀은 총 세가지로 남아프리카와 스웨덴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방법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해당 사업의 성인지성과 예산 배분방식의 형평성, 대안 등을 작성하도록 했다. 부처별로 해당사업을 평가하는 데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틀을 선택할 수 있다.

김영옥 센터장은 “일반 예산 사업을 대상으로 성평등 분석을 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스웨덴과 노르웨이 정도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정부 전체가 부처별로 하는 게 아니라 재무부가 주축이 돼 성평등 분석을 하고 있고 분석 결과도 예산서 부록으로 싣는 정도”라며 “한국의 성인지 예산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선진국형 제도”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이어 “인도나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 대다수의 중진국들이 UNDP(유엔개발계획)나 UNIFEM(유엔여성개발기금) 등 국제기구의 지원으로 성인지 예산제도를 도입했다면, 우리는 여성단체들의 여성예산운동이 기폭제가 돼 자력으로 국가재정법으로 입법화됐다”며 “법을 만든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제대로 안착될 때까지 여성·시민사회단체와 국회가 지속적인 관심과 모니터링을 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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