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집 사모님의 ‘무모한’ 농사
품값도 못벌지만 ‘훈훈한’ 마음

면사무소, 농협, 우체국, 보건소 등등 행정기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초입에 ‘병원집 사모님’이 사신다. 우체국 가는 길, 농협 가는 길에 내가 한번씩 기웃거리고 가는 집이다. 이곳은 우리 동네 대흥이 한창 번성했을 때 대흥현에 처음 생긴 신식 병원이었다. 의사였던 아저씨가 돌아가신 지 오래 되었어도 지금도 여전히 ‘병원집’이라 불린다.

병원집을 지나갈라치면 으레 눈에 띄는 것이 팔십이 넘은 사모님이 언제나 무얼 하고 계시는 모습이다. 부지런하고 깔끔하고 정갈하시고 지금도 아름다우시고…. 그 무엇보다도 예산의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서는 역사 교수님들도 따라오지 못하는 박사이시다. 특히 수의를 잘 만드시는데, 민속 전문가에게 들으니 그분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수의의 최고 장인일 거라고 한다. 동네에서는 그분께 부탁하여 수의를 장만하기도 하니 떠나는 분은 우리나라 최고 장인이 만든 수의를 입고 떠나는 거다.

그러나 사모님은 그냥 농사짓는 할머니다. 800평 남짓 되는 밭에 온갖 것 다 심어 잡수시고 남는 건 팔고…. 아들 다섯을 훌륭히 키워 모두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지위에 올라가 있지만 시골에서 그저 자연인으로 사는 것에 만족해하고 계신다. 오늘도 사모님은 집 앞 평상에서 콩바심하고 남아있는 콩줄기에 행여 남아있는 콩이 있을까 알뜰히도 찾아내어 까고 계신다.

“사모님, 날씨가 좀 쌀쌀한데 뜨뜻이 입으셨어요?”

“아, 어디 갔다 오세요? 차 한잔 하고 가요.”

사모님은 한참 아래인 나에게도 절대 하대하는 법이 없다. 사모님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안채 건물 하나가 이제 막 공사를 끝내가고 있다.

“어머나, 언제 이렇게 훌륭하게 고쳐 놓으셨어요? 저 대들보 좀 봐…. 여기에 뭐하실 거예요?”

“네, 이 자리가 우리 남편이 진료 보던 건물이거든요. 기념관을 만들려고 수리를 했어요. 그때 쓰시던 의료기구들, 요새는 골동품이 되어 구경도 할 수가 없거든. 정리 좀 해서 보관해야겠다 싶어서….”

“훌륭하세요. 정리할 때 손 필요하시면 부르세요. 저 그런 거 잘해요. 호호호.”

“고마워라….”

“사실 이런 건 군에서 지원도 좀 해주고 도와주어야 하는데…. 우리 마을의 역사잖아요.”

“뭐…, 내가 해야지….”

“그래 올해 농사는 잘 되었지요?”

“어디 보자…. 로타리 5만원 주고 치고, 두둑 만드는 데 10만원, 비니루 5만원, 일당 3만5000원 주고 총 열명 썼으니 35만원, 55만원 들었는데…, 나온 건 가만히 보자…. 흑임자 5㎏에 10만원, 들깨 서말 10만5000원, 콩 한말 2만8000원, 녹두 25㎏ 15만원, 다발콩(풋콩) 15만원, 메주콩 두말 5만원, 동부 서되… 얼만가…. 한 58만원쯤 되네….”

“에고, 사모님, 품값은 나오지도 않았네.”

사실 심어놓는 것도 일이지만, 베어내고 털고 거르는 일이 더 힘들다. 하루 종일 앉아서 콩 털고 고르고, 깨 털고 고르고…. 사모님 품값은 무엇으로 보상 받을까?

“사모님 품값도 나오지 않는데 그냥 앉아서 사 잡수시지….”

“그러면 안되지…. 몸이 움직일 수 있는데 놀고 먹는 건 죄짓는 거나 같아요. 들어가고 나오는 돈 따지면 농사는 못져요. 호호호.”

은행 떨어질 때면 은행 주우러 다니시고, 밤 철에는 배낭 메고 산으로 밤 주우러 다니시고, 봄에는 산나물 뜯으러 뒷산 헤집고 다니시고…, 사모님은 몸을 쉬게 두지 않는다.

아들들의 멋들어진 서울 아파트 생활보다 이 집, 이 삶이 더 편하고 좋다고 하시며 웃는 사모님, 얼굴이 햇살을 받아 뽀야니 어찌나 고운지….

“서울에선 in put, out put 억세게도 따졌는데…, 그런 거 안맞아도 행복한 거… 경제학에선 이런 거 설명 못할 걸?”

우리네 시골살림은 경제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거…, 이런 게 시골살림이지. 사모님께 차 한잔 얻어 마시고 돌아나와 들녘을 보니 그저 이런 기분이다.

 “아~ 참 조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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