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하기 좋은 나라
교회하기 좋은 나라

내가 어렸던 시절 내내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그가 초여름 농촌에 나타나서 바지를 걷고 농부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면 그 농부들은 마치 왕이 행차하신 양 황공해하며 머리를 조아리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이미지는 실로 우리를 빈곤에서 구해주신 나랏님, 조국을 근대화시켜준 임금님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는 곧 법이었고, 그의 발걸음이 미친 곳에 번영의 꽃이 피었다고 믿었으니, 그가 죽었을 때 마치 하늘이 무너져내린 것과 다름없이 여기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그는 제왕적 대통령, 신격화된 대통령이었고, 당시의 정치는 그가 신에게서 받은 신성한 권력을 행사한 신권(神權)정치였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30~40년 전 얘기. 이제 대통령은 포장마차 술안주 ‘깜’도 되지 않고, 정치는 신성함은커녕 가장 세속화된 영역으로 손가락질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우리의 정치에도 복고풍이 도는지 과거 신권정치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법무부가 준비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의 시안이 변질되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10월2일에 법무부가 발표한 원래 시안은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등 20개 항목을 이유로 차별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의 반대로 성적 지향을 비롯해서 병력, 출신국가,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전력, 보호처분, 학력 등의 7개 항목이 빠진 채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이 항목에 따라 차별을 하는 것은 이제 법으로 보장되는 셈이 된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런 반대운동을 이끄는 ‘동성애차별금지법안 저지 의회선교연합’이라는 이름의 단체다.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들이 연합해서 구성된 이 단체의 장헌일 사무총장은 동성애는 ‘분명한 죄악’이며 기독교 성경은 ‘동성애자를 죽이도록 명령’하고 있음을 들어서 차별금지법에서 동성애자를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요구대로 성적 지향은 법안에서 빠졌다.

중세까지는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이 구분되지 않아서 지배자는 신이거나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졌다. 종교적 교리는 정치의 기본원리로 작동했고, 경전에 나와 있는 말을 속세에서 실천하는 것이 곧 정치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세속적 권력인 정치는 종교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피를 흘리는 대가를 치렀고, 그 결과로 정교(政敎)분리가 확립되었다. 특히 기독교 전통을 갖고 있는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것은 근대성의 상징이 되었고, 따라서 정교분리가 확실치 않은 이슬람권 국가들은 마치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길지 않은 기독교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이 이제 정교통합이라는 퇴행의 길을 가고 있으니….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의 재계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이 “기업 현실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심화시켜 국가경제 발전에 저해요인이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이에 따라 법안은 변질되었고, 이제 기업이 이런 저런 기준으로 고용이나 승진을 안시켜도 뭐라고 할 수 없게 된다. 그래, 어차피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지. 그런데 이제 한국은 일부 기독교 인사들이 주장하면 그대로 따라가는 ‘교회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바른 신념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아쉽다. 임기 내에 허울좋은 차별금지법을 통과시켰음을 치적으로 삼으려는 정치인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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