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예고편 격주 회보 ‘여성신문’

1978~79년 잠시 발행됐던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사회연구회의 회보 ‘여성사회’는 85년 다시 부활한다. 85년 10월14일 속간되면서 ‘여성신문’으로 제호를 바꿔 1호를 발행한 이 진보적 여성모임의 회보는 발행과 동시에 일찌감치 회보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주요 여성이슈를 여성단체를 넘어 한국 여성들의 안방으로 직접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시도한 데다가 88년 ‘여성신문’ 창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중요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여성언론을 연구하던 여성사회연구회 회원들은 국회, 남산도서관 등지에서 이미 40여년 전 여성대변지의 역할을 자처하고 1947년 잠시 발행됐던 ‘여성신문’을 발견하고는 선배들의 창간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속간된 회보의 제호를 ‘여성신문’으로 정했다.

2·4주 월요일 발행되는 정기간행물로 40호(87년 7월27일)까지 발행된 격주간 ‘여성신문’은 그간 연구사업에 치중하던 여성사회연구회의 운동 방향을 파출탁아사업, 여성문고 운영 등 여성들의 삶과 밀접한 분야로 확대 전환함으로써 여성운동 대중화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했고, 여성단체들의 소식통으로 여성단체간 네트워킹에 구심점 역할을 했다.

회보 ‘여성신문’은 당시 여성사회연구회 회장이던 이계경 현 국회의원이 발행인 및 편집인을 맡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이후 이계경 의원은 88년 여성신문 창간에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된다. ‘여성신문’의 편집과 취재, 외고 등은 철저히 자원봉사 체제로 운영됐다. 운영위원은 곽선숙 당시 한국방송통신대 강사, 김미령 당시 ‘엄마랑 아가랑’ 편집장, 김선화(상근), 이계경(상근), 장필화 이대 여성학과 교수 등 5명이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원불교 회관 사무실에서, 때로는 집에서 밥상을 책상 삼아 주로 취재·편집작업을 했던 이들은 박유희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사장, 박효신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방송광고 심의위원, 김성숙 EBS PD, 손효경·현금자 회원, 김선화 운영위원 등이었다.

 

‘여성신문’의 주요 독자는 연 1만원 이상의 후원기금을 내는 회원들이었다. 회보 첫 발행 때부터 매주 화·금요일 오후 1~5시 사무실에서 열리는 편집회의는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형식으로 진행돼,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 회보 제작에 반영했다.

박유희 이사장은 “86년 초 모 중앙일간지에서 ‘여성일보’란 것을 상표등록해 발행하겠다면서 우리 회보와 제호가 비슷해 혼동을 주니 ‘여성신문’이란 제호를 계속 쓰면 불법간행물로 소송을 걸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낸 적이 있다”며 “당시 시대상황상 ‘여성신문’으로 등록을 할 수 없는 처지인지라 순간 겁을 먹은 우리들 중에는 회보 발행을 잠시 중단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었다. 요즘도 그때 작업을 같이 했던 이들이 만나면 웃으며 얘기한다. ‘여성신문’은 계속 나오는데 그 ‘여성일보’란 것이 결국 나왔느냐고…”라며 에피소드를 전한다. 그는 “당시 ‘여성신문’ 제호 자체가 하도 강렬해 ’여성도 이제 언론이 필요하고 우리가 그 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사람들은 받아들였다. 당시 격주간 ’여성신문‘은 현 여성신문의 예고편 같은 시대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보] ‘여성신문’들여다보니

회보시절 시대 앞서가 여성문제에 대안 모색

보통 회지 크기로 총 8쪽 흑백 면으로 인쇄됐던 ‘여성신문’은 표지에 해당하는 1면에 배치된 사설 격인 ‘우리의 생각’, 여성이슈, 여성계 소식, 생활 속 곳곳에 숨어있는 ‘성차별 현장’, 기획특집, 인터뷰, 문화계 소식 등으로 구성됐다.

2년 발행 기간 동안 줄기차게 주요 이슈로 다루어온 것들은 여성 조기정년제, 주부의 가사노동 가치, 여학생을 위한 부대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여학생의 입학을 막는 과학기술고등학교, 여성비하 광고, 여성잡지의 역할모델, 가족법 개정, 호주제 폐지, 여성에게 목사안수 허용 않는 가부장적 교단, 친여성·양성평등적 남성들, 여성이 주축이 된 KBS 시청료 거부운동, 미인대회 폐지운동, 부천서 성고문사건 등 공권력의 여성폭력, 공해문제, 교사에게 돈봉투 안주기 운동 등이었는데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다양했다. ‘자기 이름을 찾자. 그리고 떳떳하게 쓰자’, ‘자기 姓(성)을 찾자’ 등 결혼 후 가정에 매몰된 여성 정체성의 회복을 촉구하는 여성 의식화 차원의 기사도 빈번히 눈에 띈다.

당시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이었던 고 강원용 목사는 1주년 기념호에서 “여성사회연구회의 새싹이 여성신문으로 나타난 것을 보았고, 이 싹이 지금은 겨자씨와 같이 작아 보일지라도 새들까지 와서 깃드는 큰 나무로 자라 여성의 인간화에 큰 기여를 해주길 바란다”는 격려로 ‘여성신문’ 발행에 의미를 부여했다.

창간 1주년을 맞아 독자 99명의 의견을 실은 ‘독자가 말하는 여성신문’을 통해 투박하게나마 여성언론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 것도 관심을 끈다. 의견조사 결과, 독자 중 61%가 “여성신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이 바뀐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면수와 발행 횟수를 늘려달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제발 감정을 식히고 담담하게 쓰기 바람”, “남성들의 호응 및 참여기사가 늘었으면”, “여권운동에 너무 치우치다보면 피해의식이나 열등의식이 누출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등 솔직한 의견들도 재미있다.

특히 85년 12월16일 5·6호 합본호에 특집으로 실린 ‘여성사회연구회 회원들이 뽑은 매력 있는 남성, 매력 없는 남성’은 후에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대회에서 여성권익 디딤돌과 걸림돌 수상자로 ‘진화’됐고, 86년 12월22일 26호 송년특집 ‘여성신문이 추천하는 멋있는 부부’는 여성신문이 95년 1월 정무(제2)장관실과 공동 주최한 ‘평등부부상’의 모태가 된다. 

첫 호부터 실렸던 4컷 만화 ‘마고 할매’(삼신할머니)의 작가 ‘눌뫼’ 이기연씨는 후에 ‘질경이 우리옷’을 창업해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회보 발행과 함께 시도됐던 주요 사업들은 모두 ‘한국 최초’란 말이 붙을 수 있는 참신하고 혁신적인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여성전용 이동도서관 격인 ‘여성문고’, 찾아가는 탁아서비스 ‘이동육아인’, 여성전용 카페 ‘마고’ 사업을 들 수 있다.

김인자·윤소영 회원이 중심이 된 여성문고 사업의 경우 도서 간행물뿐만 아니라 슬라이드, 영화필름 등도 대여했으며, 책을 3권 이상 기증하거나 도서자료 구입비 1만원을 내면 평생 문고 이용 회원 자격을 주었다.

86년 5월 강남구 압구정동에 문을 연 국내 첫 여성전용 카페 ‘마고’는 ‘주부들의 휴식공간’을 기치로 내걸고 용지연 은평여성인력개발센터장 등 5인 공동체제로 운영됐다. 김수자 한국여성인력개발센터연합 이사가 주축이 된 이동육아인 사업은 86년 초 실시된 여성사회연구회의 ‘이동보모’ 설문조사를 통해 “자녀양육은 사회와 국가가 함께 참여해야 할 과제임”을 선언하며 대대적으로 시작됐다. 이어서 5월 관련 교육사업이 시작되면서 회원들을 중심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이동육아인 첫 교육에 참여한 25명 중 4명이 대학 재학 중이던 남학생들이었다는 것. 이들은 교육 수료 후 “육아가 여성들만의 영역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