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린다 게이츠

게이츠 재단의 기금은 320억달러(약 30조원)로 작은 나라 정부보다 큰일을 할 수 있으며, 웬만한 국제기구보다 더 큰 규모다. 게이츠 재단은 잠비아 등 5개국에 말라라아 예방과 치료를 위해 7억6500만달러,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글로벌 펀드에 6억500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게이츠 재단이 구한 목숨도 이미 7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의 1만1000여개 도서관에는 인터넷을 설치해주고, 소수 그룹에 속하는 학생 9000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대학 진학의 길도 열어주었다. 이렇듯 게이츠 재단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자 세계적 리더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워런 버핏도 이런 게이츠 재단에 참여하고 있다.

게이츠 재단이 설립된 데에는 아내 멜린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멜린다의 어떤 모습이 갑부 남편으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한 것인지, 그녀가 지니고 있는 영향력을 리더십의 특성을 통해 알아보자.

첫째, ‘리더십 플러스’이다

리더라는 개념 속에는 탁월성을 갖춘 리더를 축으로 해 다수의 평범한 개인이 포진해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멜린다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여러 리더들에게 영향을 주는 리더십이다. 멜린다 게이츠의 영향력은 대다수 대중은 물론이고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은 리더에게 행사되고 있다. 투자의 황제 워런 버핏이 게이츠 재단에 약 310억달러를 기부했으며, 심지어 유럽연합도 게이츠 재단에 자극받아 개도국 어린이들의 질병 예방을 위해 4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런 의미에서 멜린다의 리더십은 리더에게 영향을 주는 리더십+(플러스)인 셈이다.

둘째, ‘겸손한 권력’이다

리더십은 영향력이며 영향력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의 대표적인 것은 권력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은 정치적 용어로 남을 지배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권력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관계의 한 모습이다. 권력은 누군가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뜻한다. 권력에 대한 정의는 학자들마다 다양하지만 가장 보편적이며 널리 사용되는 정의는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정의이다. 베버는 ‘권력은 타인이 내 의지에 따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권력은 소유가 아니라 기회인데,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찬스라는 의미이다.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리더십이 평가된다. 전통적인 리더십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고, 21세기 리더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권력은 일반적으로 두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권력의 원천에 따른 분류인데, 하나는 공적인 권력과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권력이다. 공적인 권력은 지위에 근거하는 반면, 인간적인 권력은 지위와는 무관하다. 지위에 근거한 권력은 일과 관련한 권력행사로 사람 자체와는 무관하다. 공적인 권력은 주어지는 반면, 인간적인 권력은 개인의 능력, 지식, 품성 등과 같은 개인적 요소에 따라 나타난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권력은 공적인 권력만이 아니다. 인간적인 권력이 동반하지 않는 권력은 두드려야만 울리는 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멜린다는 텍사스주에서 태어나 듀크대학에서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입사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빌 게이츠와 만나 지난 1994년 결혼했다. 멜린다는 남편 빌의 부를 자신의 안위와 즐거움을 위해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멜린다는 부가 가져다준 권력을 다른 사람을 살리는 기회로 활용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권력을 혼자 누리기보다 타인들과 함께 나누는 기회로 삼았다. 어둠에 빛을 비추고, 꺼져가는 불빛을 살려내는 기회로 삼았다.

일반적인 권력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멜린다의 권력은 남을 위한 영향력이다. 남을 위한 권력은 절대로 오만하지 않으며 다만 겸손할 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다.  

셋째, ‘부드러운 힘’이다

전통적 리더가 명령과 통제를 수단으로 한다면, 21세기 리더는 참여와 동기를 바탕으로 한다. 전자가 구성원의 입장이나 처지와는 무관하게 성과에 집중한다면, 후자는 이해와 배려를 통해 상대방을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명령과 통제가 남성적 카리스마를 전제로 한다면, 참여와 동기는 부드러운 힘을 기초로 한다.

부드러운 힘은 상대방을 나와 동등한 인격체로 평가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힘은 소극적인 힘이 아니라 절제된 힘이다. 적절하고 꼭 필요한 때에 힘을 발휘한다. 이런 의미에서 멜린다의 리더십은 부드러운 힘이고, 21세기가 원하는 리더십이라 평가하게 된다.

넷째, ‘설득의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신 패러다임은 쌍방통행이다. 일방적 지시로 남의 행동을 움직이는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스스로 변하고 행동하도록 하는 최선의 길은 상대방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것이 설득이다.

멜린다는 결혼 후 전업주부로 세 아이 양육에 전념하며 살다 셋째아이가 돌을 넘긴 2000년부터 본격적인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남편과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바라본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먹을 것을 구걸하는 아이들, 웃음을 상실한 지 오래된 애늙은이들, 이런 모습이 하나 둘씩 쌓여 더 깊은 연민으로 변해갔다.

멜린다는 이 연민의 마음으로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자선사업에는 무관심했던 남편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아내의 설득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제3세계 빈민구호와 질병퇴치를 위한 ‘빌 & 게이츠 재단’은 이런 진솔한 아내의 설득으로 태어났다. 빌 게이츠에게 이제 기부나 자선은 사업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다.

멜린다는 남편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쉽게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순수하고 진솔한 마음으로 자신이 경험하며 쌓아온 연민을 전달해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세계 최고의 기업사냥군이 세계 최고의 자선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죽기 전에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공언까지 했을 정도다. 포기하지 않는 진솔함과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멜린다에게 설득의 힘을 선사한 것이다. 설득의 힘은 목표지향적이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는 것을 두고 왜 어두운 데를 지나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 터널은 목적지에 닿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멜린다가 지닌 설득의 힘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자리하고 있었다. 생명의 소중함, 인간의 고귀함과 같은 것들이다.

멜린다 게이츠의 리더십을 정확하게 분석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멜린다로부터 배우는 리더십의 기본은 권력(기회)에 대한 바른 사용이다. 멜린다의 권력은 남들보다 많은 부다. 멜린다는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고, 쌓아두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부자들이 태어났다가 사라져갔다. 이들 중에는 남을 돕기도 하고 자선단체를 운영한 사람도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면서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 후세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기부를 한다. 멜린다처럼 한창 부를 누리고 싶은 젊은 때에 생명을 구하고 남을 돕는 것 자체를 또 하나의 목표로 설정한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이 멜린다의 진솔한 영향력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21세기의 진정한 리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