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내는 정책공약…비용부담 어떻게
정치적 무관심이 빚어내는 비효율성

대선이 40일도 안남았다. 정치라면 신물이 난다고 냉랭하던 민심 속에서 홀로 지지율 50%대를 유지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독주가 예상되어 대선이 싱겁게 끝나나 했다. 그러나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 눈물을 흘리며 국민 앞에 사죄하고 정치를 떠나겠다던 이회창 전 후보가 돌아와 대선 삼수에 나섰다. 선거 때마다 네거티브 선거를 지양하고 이번만큼은 정책선거를 하자면서도 그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

각 후보 진영에서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해 각종 정책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후보들의 공약이 다 지켜져서 정책으로 추진된다면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매년 일자리는 50만개 이상 만들어지고 집이 마구 생겨나고, 실질 경제성장률은 7%대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 비용을 누가 대느냐는 것이다. 국민들은 대선주자들이 공약한 대로 하려면 세금을 더 징수하든지, 정부가 빚을 더 지게 될 것을 알지만 과연 얼마나 내게 부담이 되고, 혜택이 될지를 알려면 정보비용이 든다. 아까운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내가 받게 될 혜택은 별로 구체적이지도 않고 크지도 않으니 그냥 무시하고 만다. 국민들로서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것을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라고 부른다.

특히 이런 대선 기간일수록 합리적으로 무시할 일이 늘어난다. 대선 철에는 이익단체들이 목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대선주자들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표를 의식해서 들어줄 수밖에 없다. 국민들도 사실 여기에 방관적 동조자로 거들게 된다. 바로 정치적 무관심 속에서 나타나는 유권자들의 합리적 무시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로비를 통한 이익집단의 지대 추구가 수많은 비효율을 만들어냄에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보자. 1000억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두 가지 정책이 있다. 하나는 국가경쟁력 증진이 목적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건강을 위한 발관리 정책이다. 전국발관리협회가 있다. 회원 수는 1000명이다. 이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대선주자에게 다가가 국민발관리기본정책을 채택하도록 한다. 국민의 발관리가 모든 건강의 기본이므로 국민은 누구나 1년에 한번씩 발관리를 받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총 1000억원의 발관리시장이 형성되어 발관리협회 회원인 발관리사는 1인당 매년 1억원의 수익이 예상된다. 어느 정책을 대선주자들이 채택할 확률이 높은가? 당연히 발관리기본정책이다.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국가경쟁력 정책을 쓰면 국민에게 다가올 이득은 1인당 2000원이다. 별로 국민의 관심을 얻기 어렵다. 그러나 발관리 정책은 이득을 보게 될 집단이 명확하다. 대선주자의 입장에서는 확실한 1000표가 알 수 없는 국민 다수의 표보다는 구미가 당길 것이다. 회원 1인당 1억원이 돌아가는 반면, 그에 비해 의식이 있는 국민이라도 1년에 발관리 비용으로 2000원만 쓰면 되는데 별로 신경을 안쓴다. 알기는 아는데 비용이 얼마 안되니 무시하는 것이다. 설사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 정책을 막기 위해 소송이라도 걸려면 돈이 드는데 그 돈을 대겠다고 나서는 국민이 과연 몇명이나 될 것인가? 그러나 발관리협회 회원은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로비도 할 충분한 경제적 유인이 있다.

경제적 의사결정의 경우와 달리 정치적 의사결정은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한 노력을 상대적으로 덜 하는 경향이 있으며 하기도 쉽지 않다. 투표하는 것은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과자 1개, 과일 5개, 이렇게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바구니에 담긴 종합선물세트를 그것도 5년에 한번 일괄 구입해 싫든 좋든 먹어야 하는 것이다. 대선 철에는 각종 공약이 난무하는 만큼 합리적 무시의 폐해가 두드러진다. 가랑비에도 옷이 젖는다고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그냥 봐주면 결국 국가는 허약해진다. 합리적 무시는 국가를 좀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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