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세자빈 다이애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그녀의 무수한 남

성편력과 불행했던 결혼생활이 다시 한번 ‘총정리’되고 있다. 다이

애너는 92년 노태우대통령 당시 영국왕실인사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

라를 방한한 적도 있다. 또 언론을 통해 자주 소개되어온 탓에 우리

에게는 헐리우드 스타 만큼이나 이름이 낯익은 여성이다.

다이애너는 서양여성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많은 한을 가슴에 지닌

채 36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다이애너의 한은

‘세기의 결혼’이라 불렸던 화려한 결혼식에서부터 시작된다. 두 왕

자를 출생하는 것으로 결혼의 행복은 완성되는 듯이 보였으나 그 이

면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다이애너는 파탄 속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의 남편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너 모두 왕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와 관련된 책들이 발간돼 전세

계의 관심을 끌었다.

그중 하나로 찰스 왕세자가 제공한 자료를 토태로 쓰여진 <웨일즈의

왕자>에서 찰스는 그의 결혼이 부친의 강권에 의한 것이었으며 “결

혼할 때도 결혼한 이후에도 단 한번도 다이애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

”고 고백하면서 20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애인 카밀라 파커

보울즈와의 사랑을 고백한다. 남편으로부터 단 한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고백을 출판물을 통해 확인한 여자의 심정이 처참했을 것이

다.

다이애너의 또다른 한은 사랑한 남자로부터 농락당한 한일 것이다.

찰스의 심경고백서인 <웨일즈의 왕자>가 출간되기 2주전에 발간된

<사랑에 빠진 다이애너>는 다이애너가 사랑했던 승마교사인 육군소령

제임스 휴이트가 제공한 자료를 포함해 자유기고가가 쓴 내용이다.

<웨일즈의 왕자>가 당사자인 찰스의 승인 아래 쓰여진 책인 반면에

<사랑에 빠진 다이애너>는 다이애너를 ‘세기의 창녀’로 전락시키는

저급한 책이다. 이 책에는 다이애너가 휴이트와 최소한 7번의 잠자리

를 같이 했다는 사실이 폭로돼 있다.

“다이애너가 침실에서 유혹했다.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는 등의

서술이 다이애너의 애인이었던 휴이트의 증언으로 소개돼 있다. 이

책은 물론 영국내에서도 사실성을 의심받았고 휴이트는 ‘비겁한 사

기꾼’으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이 책은 전세계로 퍼져나갔으며 휴이

트는 거액을 받았다고 한다.

다이애너가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언론의 집요한 추적이었다. 다이

애너는 이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가장 두려운 건 언론의 집요한 관심이었다. 언론은 시기와 질투심

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녀의 사망원인이 된 교

통사고도 상업사진사인 ‘파파라치’를 따돌리기 위한 과속이 원인이

었다니 다이애너가 얼마나 저급한 언론의 추적이 시달렸는가를 암시

해준다. 영국내에서도 거액의 사례금을 주고 정보를 사는 이른바 ‘

수표 저널리즘’은 큰 골치거리로 ‘저널리스트 매수 금지법안’이

제안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법원은 다이애너 사망 보름전

에 다이애너의 요청에 따라 한 프리랜서 사진작가에게 다이애너의 3

백미터 이내로 접근하지 말라는 법원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다이애

너는 이 사진 작가가 어디를 가든 오토바이를 타고 따라와서 자신의

승용차와 부딪친 적도 있으며 외출이 두려운 상태라고 호소했었다.

다이애너는 “사진 찍히지 않고 주말에 해저터널 기차를 타고 파리에

가고 런던 거리에서 인도에 앉아 점심을 먹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

할 정도였다.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상업언론들이 한 개인을 어떻

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다이애너의 교통사고는 말해준다. 우리나라에

서도 다이애너의 스캔들 소식은 무척 많이 접했지만 그 스캔들이 다

이애너라는 한 인간에 대해 얼마나 진실을 말해주었는가를 질문해봐

야겠다. 다이애너는 파멸한 신데렐라였나? 도덕불감증의 탕녀였나?

아니면 교만한 영국왕실의 일원이었나? 억세게 운나쁜 여자였나? 우

리가 접한 그 무수한 정보들은 대개 이런 질문들과 연관돼 있다. 아

주 짧게 소개된 기사에 의하면 그녀는 이혼이후 심장병, 암 퇴치를

위해 국제적인 활동을 많이 했고 특히 대인 지뢰제거에 열정을 쏟아

온 인권운동 관련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영국대사로 활동할 것을 희

망하기도 했다.

그녀의 남성편력이 사실이라고 해도, 한 인간을 어찌 이성관계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찰스와 다이애너 중 먼저 외도를 시작하고 먼저

배우자를 배신하고 먼저 치명적인 공격을 한 사람은 찰스 쪽임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너의 스캔들이 더 ‘맛있는’ 안주가 되었다. 다이애

너의 남성편력 이외의 다른 면들, 일과 생각과 윤리관 등은 증발해

버렸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한 인격체를 ‘맛있는’ 안주거리로 요리

하는 실습대상이 되어버린 다이애너는 그 왜곡되는 압박을 이기지 못

하고 ‘실습’과정에서 죽어버린 것이다.

이 모든 수난에도 불구하고 다이애너가 아이들을 걱정했던 점은 어

머니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이애너는 아이들 문제로 마지막까지

이혼을 반대했고 이혼 이후 언론에 까발려지는 일련의 스캔들에 대해

서도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했으며 특히 휴이트와의 관계가 지

저분하게 드러났을 때도 아이들의 충격을 걱정했다. 이혼 이후에도

영국을 떠나고 싶었으나 왕위계승서열에 들어 있는 왕자 때문에 그러

지 못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 숨진 다이애너에게 일초라도 의식이

가능했다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두 아들의 가슴에 드리워질 그림자를

걱정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 영국왕실의 일원이라는 뉴스가치를 떠나 다이애너가

사랑하는 두 아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상업

저널리즘이 다이애너를 그렇게까지 난도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런 점에서 저급한 저널리즘은 지극히 반모성적이고 반생명적이 폐악

이 아닐까 싶다.

<김효선 편집부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