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여성·미혼모 ‘악재’ 딛고 전 세계 ‘토크쇼의 여왕’으로
흑인·여성·미혼모 ‘악재’ 딛고 전 세계 ‘토크쇼의 여왕’으로
  • 권지희 /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07.11.02 14:15
  • 수정 2007-11-02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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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첫 흑인여성 앵커…여성차별·빈곤 해결에 강한 의지
여성경영인 변신 대성공…수입의 10%씩 자선사업에 쾌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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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세계적인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53)는 1954년 1월29일 미국 미시시피강 근처의 가난한 흑인 마을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다. 6살 때까지 외가에서 자랐는데, 자기 신발 한 켤레가 없었을 정도로 가난했다.

오프라는 9살 때 19살의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로 어머니의 남자친구나 가까운 친척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14살에 사생아를 낳았으나 미숙아인 탓에 2주 만에 사망했다. 20대 초반에는 남자친구로 인해 마약을 복용했다가 감옥에 드나들기도 했다.

“독서가 내 인생을 바꿨다”

불행한 유년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책’에 있었다.

외할머니 해티 메이 리(Hattie Mae Lee)는 3살 때부터 오프라에게 읽기와 쓰기, 성서 암기를 가르쳤다. 8살 때 가정형편을 이유로 아버지 버논 윈프리(Vernon Winfrey)에게 보내졌는데, 그는 오프라에게 일주일에 책 한권을 꼭 읽게 했으며 독후감을 쓰도록 했다. 이때부터 오프라는 독서에 매진했고, 14살 때 아이를 잃은 후에는 여성문제를 다룬 책들을 탐독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에 관심이 많았던 고등학생 오프라는 17살 때부터 내슈빌 지역의 작은 라디오 방송국인 WVOL에서 뉴스 기사를 읽는 방과후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미국은 수십년간 차별받아온 소수민족과 여성에게 일정 비율의 고용을 할당해주는 ‘소수계 우대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내슈빌의 WYVF-TV 방송국의 한 간부는 오프라의 방송을 듣고 그가 두가지 요건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것을 떠올린 후 오디션을 제안했다.

오프라는 테네시 주립대에 재학 중이던 19살에 내슈빌 WYVF-TV 뉴스 프로그램의 공동진행을 맡은 미국 최초의 여성 흑인 앵커가 됐다.

이후 여러 매체를 옮겨 다니다가 1985년 시카고 WLS-TV 아침 토크쇼 ‘AM 시카고’의 진행을 맡았다. 방송 4주 만에 동시간대 토크쇼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1년 뒤 ‘오프라 윈프리 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다시 1년 뒤 오프라 윈프리 쇼는 미국 135개 방송국에서 방영됐다. 

오프라는 토크쇼에서 성폭력과 성차별, 이혼, 아동학대, 다이어트 등 여성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주제를 다뤘다. 그의 방송에는 유명인부터 감동적인 사연을 가진 보통사람들이 출연했다. 방청객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이 오프라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96년부터 ‘북클럽’ 코너를 만들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책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오프라는 “독서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오프리가 선정한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99년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책을 읽도록 장려한 공로로 미국도서재단의 50주년 기념 황금메달상을 수상했다.

‘오프라이즘’ 신조어 만들어

현재 ABC에서 방영되는 오프라 윈프리 쇼는 3000만명의 고정 시청자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105개국에서 방영되고 있다. 20여년 동안 미국 낮 시간대 TV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이 토크쇼는 미국 텔레비전 예술과학 아카데미가 수여하는 ‘에미상’을 2002년까지 30회 수상했으며, ‘TV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의 성공기는 ‘인생의 성공 여부는 온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의 신조어 ‘오프라이즘(Oprahism)’을 만들어냈다.

88년 오프라는 ‘하포 프로덕션’을 설립해 여성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하포(Harpo)는 그의 이름 오프라(Oprah)를 역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자신의 토크쇼를 비롯해 영화와 TV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했다. 2000년에는 여성전문 케이블TV 방송사인 ‘옥시즌(Oxygen)’을 설립했고, 잡지 ‘오(O)'를 창간했다. 하포사는 매년 10억달러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오프라는 2003년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경제전문지 ‘포브스’로부터 재산 10억달러 이상의 부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됐다. 그는 지난해에만 2억6000만달러(약 2420억원)를 벌었고, 총자산은 15억달러로 올해 초 ‘연예계 여성 최고부자 20인’ 중 1위에 올랐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지난 10월 오프라를 ‘2007년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 8위로 선정했다.

‘오프라 리더십 아카데미’ 설립

오프라는 기부활동에도 적극적이다. 87년 전세계 여성과 아동, 가정의 복지를 지원하기 위해 자선단체인 ‘오프라의 에인절 네트워크’를 설립했으며, 자신이 버는 돈의 10%를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5830만달러를 기부해 연예·스포츠계 유명인사 중 자선기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으로 뽑혔다. 2002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학교와 고아원에 옷과 음식, 기자재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오프라는 이같은 활동으로 2004년 유엔 ‘세계 지도자상’, 2005년 미국 인권박물관 ‘자유상’ 등을 수상했다.

올해 1월에는 4000만달러(약 380억원)를 투입해 남아공 헨리온클립 마을에 여학생 기숙학교인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현대식 교실과 스위트룸 수준의 기숙사, 과학실험실, 도서관, 극장, 헬스센터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올해 11~12세 여학생 152명이 입학했으며, 전액 무료로 공부하고 있다.

오프라는 지난 5월 워싱턴DC 소재 하워드대에서 인문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한편, 오프라는 미 대선을 앞두고 유일한 흑인후보인 민주당 대선 유력후보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을 공개 지지했다. 지난 9월 8일 하룻동안 약 28억원에 달하는 선거자금을 모금해주는 등 ‘오바마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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