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장들이 만드는 유기농 쿠키 맛보실래요?”
우리밀 등 친환경 우리농산물 고집…가격 비싸지만 한번 맛보면 ‘단골’
99년부터 여성가장 자활공동체 역할…결식아동·독거노인 ‘쿠키 기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에 위치한 우리밀 베이커리 ‘아낙과 사람들’ 공장에서는 향긋한 과자 냄새가 풍겨나왔다.

입구에 들어서니 창립 멤버인 최혜린(47) 이사와 김지영(48) 이사의 손놀림이 바쁘게 오간다. 체에 내린 밀가루에 으깬 버터와 국화꽃 가루를 섞어 반죽을 하고, 나무와 별, 하트 모양으로 찍어내 오븐에 굽는다. 바삭하게 구워진 노릇한 쿠키가 식욕을 돋운다. 맛을 보라며 쿠키를 건넨다. 담백하고 고소하다.

최 이사는 “100% 우리밀로 만든 유기농 쿠키”라며 “지난주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심의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고 그동안 도움을 줬던 이들에게 손수 쿠키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낙’은 우리밀로 쿠키를 만들어 판매하는 여성가장 자활공동체다. 이혼이나 사별, 남편의 사고 등으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여성가장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최 이사를 포함해 12명의 직원이 쿠키를 굽는다. 이번 사회적 기업 인증으로 직원은 더 늘어날 것이다.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 자부심”

아낙 쿠키는 좀 비싸다. 200g 한 봉지에 4000원이나 한다. 판매처도 협소하다. 유기농 식품매장에서도 판매하고 있지만, 개인 주문판매가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아낙 쿠키는 인기가 꽤 높은 편이다. 달지 않고 물리지도 않아 한번 먹어본 사람은 단골이 되는 데다, 특히 아토피 때문에 과자를 먹지 못하는 자녀를 둔 엄마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은 행사 때면 어김없이 아낙에서 먹을거리를 구입한다.

비결은 질 좋은 재료에 있다.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에서 생산하는 100% 순국산 밀가루와 최고급 버터, 토종 해바라기씨, 유정란만을 사용한다. 보통 매장에서 판매하는 우리밀 쿠키는 우리밀 20%에 외국산 밀가루 80%를 섞어 만들었다는 게 최 이사의 설명이다.

첨가물도 색다르다. 첨가물을 넣지 않은 기본형 ‘아낙 쿠키’를 비롯해 야생들국화 가루를 넣은 ‘레이첼’, 녹차와 쑥 가루를 넣은 ‘초록의 비밀’, 백년초를 넣은 ‘행복의 조건’, 계피를 넣은 ‘흙의 숨결’ 등 건강과 맛, 먹는 재미까지 모두 담았다. 

아낙의 한달 매출액은 1000만원. 많지는 않지만 12명의 직원에게 80만원씩 월급을 주고, 재료비와 공장 운영비 등을 충당할 정도는 된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윤이 늘었지만 모두 월급을 올리는 데 썼다. 2년 전 월급은 50만원이었다.

최 이사는 “좋은 일을 하고 싶지만 당장 아이들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가난한 여성가장들이 이곳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경제적 자립이라는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제일 목표 ‘지속가능일자리 창출’

아낙의 모태는 1998년 만들어진 ‘프리워’(FReE-War·Feminist Revolution in Economic War)다. 프리워는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돕고, 직장에서의 부당한 대우에 함께 대응하기 위해 여성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조직이다. 이 중 여성가장들만 따로 모여 스스로 먹고살 방법을 찾다가 99년 지금의 아낙을 만들었다.

지금은 과자를 주로 하지만, 그때만 해도 각종 빵을 만들어 팔고 출장요리 뷔페도 했다. 과자와 빵, 케이크 모두 보통 밀가루로 만든 것들이었다. 그러다 2002년 김진 목사(향린교회)가 대표로 오면서 우리밀 유기농 과자로 ‘전공’을 바꿨다. “여성이 하는 사업은 생명을 살리는 살림이어야 한다”는 김 목사의 말에 모두 동감했기 때문이다. 

최 이사는 “만약 그때 유기농 과자로 바꾸지 않았다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우리밀 등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사용해 농촌을 살리고, 무공해·무농약·무색소·무방부제 제품으로 건강을 살리며, 제빵·제과라는 전문기술을 배워 경제력이 없는 여성가장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틈틈이 쿠키와 빵을 만들어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 노숙자들에게 베푸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울대·연세대 병원에서 암과 희귀병,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어린이 200명에게도 한달에 두번 우리밀 쿠키를 지원한다. 가난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 하나가 친환경 먹을거리라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다.

요즘에는 ‘우리밀 베이커리 카페’를 만들기 위해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지난 2005년 지인의 도움으로 영등포에 있는 하자센터에 카페 ‘그래서’ 1호점을 낸 후 계속 정체상태였는데, 사회적 기업 인증으로 공공기관 건물을 우선 매입할 수 있는 혜택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선 동(洞) 통·폐합으로 리모델링을 앞둔 서울시내 동사무소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카페 2, 3호점을 낼 계획이다. 

“여성가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입니다. 우리밀 쿠키를 만드는 기술과 카페를 통한 판매는 여성들의 자립을 돕는 안전장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발판 삼아 더 많은 여성들에게 힘이 되는 아낙이 될 겁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