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마다 ‘고부간 갈등’단골소재
극성스런 시어머니와 희생적인 며느리 뿐
당당한 여성의 모습은 없고 시청률만 의식

“고부간의 갈등은 드라마의 영원한 소재다. 낡아 보일 수도 있지만 원초적이며 영원한 테마이기도 하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욕심이 커진 만큼 고부간의 갈등도 예전보다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요즘 시대에 맞는 주제가 될 수도 있다.”

MBC 주말 특별기획드라마 ‘겨울새’의 정세호 PD가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던진 말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끊이지 않고 다뤄지는 단골 소재가 고부갈등이라지만 최근 방송3사의 주말드라마를 보면 ‘고부갈등에 휩싸이고 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극성스런 시어머니와 ‘착한여자 콤플렉스’의 며느리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고부갈등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MBC ‘겨울새’다. 

주인공 영은(박선영)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자신을 키워준 정 회장의 아들인 동현(이태곤)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을 한다. 결국 현실에 대한 도피처로 다른 사람과의 결혼을 선택한 영은은 마마보이 남편 경우(윤상현)와 아들과 돈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시어머니(박원숙)로 인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겨울새’는 1992년에 이미 드라마로 방영됐던 김수현 작가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 그로부터 15년이 흘렀지만 원작의 캐릭터와 갈등구조가 그대로 답습되어 도대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했는지, 시대에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특히 일에서는 똑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데 있어선 소신을 펼치지 못하는 영은의 캐릭터나 며느리에 대한 시어머니의 비상식적인 구박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옛 약혼자와 이틀 동안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 ‘흠 있는 색시’나 ‘헌 색시’를 운운하는 시어머니, 이혼을 결심했다가 임신사실을 알고는 “모두가 바라는 일이니까 한번은 그냥 넘어가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도저히 2000년대의 드라마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KBS2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연출 정해룡, 극본 조정선)는 서울 장충동 족발집을 배경으로 가부장적인 시할머니 향심(김을동)과 평생 눌려 사는 시어머니 미순(윤여정), 신세대 며느리 미진(이수경) 등 3대 고부간의 갈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

조정선 작가는 제작발표회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이야기는 가장 진부한 것이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가족의 문제로 남아있고, 가족이 변화하는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한번 이야기해보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발랄한 신세대 며느리에 초점이 맞춰진 이 드라마는 얼핏 보면 고부갈등이라는 소재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룬 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시집살이와 며느리살이를 동시에 해야 하는 미순의 상황은 10년 전 방송됐던 ‘사랑이 뭐길래’의 김혜자 모습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50대 후반 나이에 시어머니에게서 종 같은 대우를 받는 미순의 모습이 작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하나의 고부 팀인 수현(송선미)과 명희(김혜옥)의 관계묘사 역시 마찬가지다. 명희는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시어머니의 전형으로 그려지고, 집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참고 견디는 수현의 모습은 답답하기만 하다.

MBC 주말드라마 ‘깍두기’(연출 권석장, 극본 이덕재)에서도 고부갈등이 중요한 포인트로 등장한다. 자기 주장이 강한 부잣집 출신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는 시어머니(김자옥)와 일을 중요시하며 시어머니의 간섭 없이 살고 싶어 하는 며느리(박정숙)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또한 SBS 주말극장 ‘황금신부’(연출 문군일, 극본 박현주)에서도 과거가 탄로나는 것을 막으려는 며느리(최여진)과 시어머니(견미리)의 갈등이 그려진다.

제작진들이 이야기했듯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존재하는 한 고부갈등은 피할 수 없는 소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변화된 사회를 읽지 못하고 희생적이고 수동적인 며느리와 극성스런 시어머니의 대립만을 과대포장하며 70년대 드라마의 갈등구조를 답습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분석된다.

드라마 ‘겨울새’는 홈페이지를 통해 ‘21세기의 노라 이야기’라는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노라는 이미 19세기에 자아를 찾아 집을 나온 인물. 21세기의 노라를 그리려면 주체적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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