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이 ‘여성’의 몸으로 진화중
최근에야 “내 몸의 주인은 나”
차별 근거로 그동안 숱한 왜곡
피임도 여성 인권 관점서 생겨

 

중세 서양에서는 여성의 몸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 자주 등장했다. ⓒ출처=‘이브의역사’(도서출판 자작)
중세 서양에서는 여성의 몸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그린 그림이 자주 등장했다. ⓒ출처=‘이브의역사’(도서출판 자작)
‘여성의 몸’이 ‘여성’의 몸으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당신의 몸은 누구의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불행하게도 여성들은 최근에서야 “내 몸의 주인은 내 것”이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오랜 역사 동안 ‘여성의 몸’은 차별의 근거로 사용되면서 온갖 왜곡에 시달려왔다. 남성들은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성의 몸을 결함이 있는 대상으로 취급해왔다.   

미국의 인류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라나 톰슨은 저서 ‘자궁의 역사’에서 “모성이 여성의 본성이고, 여성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은 자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궁이 몸속을 돌아다니면서 히스테리를 일으킨다고 믿었다. 17세기에 들어와 인체 해부가 늘면서 자궁이 골반 속에 고정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19세기에 와서도 일부 의학자들은 자궁 이상이 정신질환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이런 질환자들에게 의사들은 음핵 절제술과 난소 절제술, 클리토리스 절제술을 권장했다고 한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성의 몸은 왜곡에서 풀려나질 못했다. 의학 및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이해는 높아졌지만, 기술을 독점한 병원과 의사들은 (여성)환자의 선택의 권리를 빼앗아갔다.

이에 대해 컬럼비아대학교의 메리앤 리가토 교수는 “여성이 불평등한 의료혜택을 받는 것은 남녀의 성차를 인정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불과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의료계 종사자들은 남성만을 연구했고, 연구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수정하지 않은 채 여성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같은 질환인데도 의사들은 남녀에게 각각 다른 병명을 내리곤 했다는 것. 일례로 심장전문의들이 여성의 심장 관련 증상을 히스테리나 감정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그의 저서 ‘이브의 몸’을 통해 밝혔다.

여성들이 자신의 유방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것도 60년대 말 미국에서 시작된 여성해방운동 때부터다. 유방은 수천년 동안 남성의 소유물이었다. 미국의 원로 여성학자 메릴린 옐롬은 “여성의 유방은 시대를 지배했던 남성과 제도·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전유돼왔다”고 지적했다. 고대 여신의 유방은 신성함으로 여겨졌지만, 젖을 먹이는 엄마의 유방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16세기부터는 여성성의 상징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했고, 서양에서는 여성의 유방을 드러낸 그림들이 상품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중화된 피임도 사실은 미국의 간호사 마거릿 생거의 피나는 노력에 의한 결과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900년대 초 생거는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피임법을 일반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39년 의사들의 무제한 피임처방권과 관련한 법이 제정됐다.

여성해방운동에 불을 지핀 프랑스 소설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했다. 보부아르의 선언은 아직도 유효하다. 여성의 몸이 사회적인 요인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날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